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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 Dal McCrindle

By Philip Francis 30 Jun, 2021
June 27, 2021 " CLEARING OBSTACLES?" Rev. Dal McCrindle 오늘 본문 말씀은 제가 대학교 다닐 때 배웠던 옛날 복음송 가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실은 이 가사는 1963년에 씌여졌다는 것이 아니고 그 해는 제가 대학을 다녔던 때였습니다. 이 찬송은 그 시절 연합 교회가 즐겨 부르던 찬송이 아닙니다. 연합 교회는 극히 전통적이거나 감정적인 찬송을 삼가 해왔었습니다. 그 찬송은 “그분이 나를 어루만지시네” 라는 곡으로 복음주의 교회에서 즐겨 부르던 찬송으로 예수님을 통하여 변화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마가 복음에 나오는 내용으로 사람들이 신비한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었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가사는 “무거운 짐의 쇠고랑에 묶여, 죄책감과 수치심에 사로잡혀 있었으나, 예수께서 나를 만지시니, 이제 나는 더 이상 이전의 내가 아니라네.” 이를 오늘날 말로 해본다면, 예수께서 절망 가운데 있는 자에게 찾아오시고 그가 예수님께 손을 내밀어 그분을 만졌다. 아무튼, 이전의 해석이든 오늘날의 해석으로든 그 결과는 동일합니다 – 그들은 고침을 받았다! 마가는 예수님을 만나자 많은 일들이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변화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문제가 있는 사람들, 건강의 문제 이든, 다른 문제이든 하나님께로 믿음을 둔다면 변화가 있으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나를 만지시네; 오- 그분이 나를 만지시니 내 영혼에 기쁨이 넘치네! 무언가 변화가 있다는 것을 나는 아네, 그 분이 나를 만지시니 나는 온전하게 된다네.” 60년대에는 연합 교단에 속한 교회 중 어느 교회 신도들은 하나님께서 만지신다는 표현을 하는 것을 감히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가 온전하게 된다는 것에 대해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인즉, 뭔가가 부족하다는 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너무도 근본주의적인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할 것도 없이, 오늘날 우리가 이것을 이해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고치시고 만지시고 우리의 껍질을 깨뜨리신다는 것으로 이해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만지심으로 고침을 받는다는 것은 이중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혈루병을 앓던 여인이 고침을 받은 것과 야이로의 딸이 고침을 받은 것이 비교되어 말하여지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는 여자들이 등장하고 숫자 12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두 이야기에서 나오는 인물들 모두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한사람은 혈루병을 가졌던 여인이고 또 한사람은 아이의 아버지 였습니다. 말씀은 퍼져나가야 할 것 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예수님께서 만지심으로 고침을 받은, 기적에 관한 것 이었습니다. 이 본문은 최근 수십년 간 힐링터치 사역을 해온 부서에게는 좋은 구절이 되겠지요. 이 사역을 오랜 동안 지켜 본 어느 분은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 교회에 가서 힐링 터치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 분들의 삶에서 기본적으로 누군가와 신체적인 접촉을 하지 못한 분들이겠지요. 문 앞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악수를 하고 혹은 가벼운 포옹과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것들 말이지요 – 사람과의 접촉은 사람들의 인생을 아주 다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코비드로 인해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 중에는 사람들과 가볍게 포옹하면서 인사 하는 것을 할 수 없었던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어떤 설교는 예수님께서 낫게 하시는 기적에 대해서 중심을 두고 이 본문을 예로 들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증거하고, 하나님께서 삶과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사시고 나타난 것을 말씀으로 전합니다.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를 건너오시면서 폭풍을 잠잠하게 것으로 시작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예수께서는 무덤에 살면서 스스로도 해하던 귀신 들린 남자에게서 귀신들을 쫒아내신 사건 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쫒아내신 기적을 마가는 예수께서 우리들의 병든 몸을 낫게 하시고 심지어는 삶을 위협하는 것으로도 우리를 회복 시켜주시는 것으로 기록 하였습니다; 예수 께서는 병들어 죽었었던 혹은 죽음 문에 다다랐던 소녀를 살리셨습니다. 그 일을 하신 분은 “예수님” 이라고 마가는 말 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분이 우리가 기다리던 분입니다. 예수님은 메시아 세상을 뒤집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을 보십시오. 도움이 필요 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분이 여러분을 만지도록 하십시오. 아니면 여러분이 그 분을 만지십시오! 만지든 만짐을 당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지금 여기에 하나님의 임재가 차고 넘칩니다. 그 분은 우리와 상관이 있기를 원하시고 우리가 온전 하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저를 축복 하시는 우리 구세주를 만난 후 부터. 그 분께서 저를 씻으시고 온전케 하신 후 부터 저는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찬양을 멈추지 않을 것 입니다; 사는 동안 저는 그분을 소리쳐 찬양 할 것 입니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시자, 귀신에 사로잡힌 그 남자는 예수님과 함께 다니기를 사정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 하시기를, “친구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떤 복을 주시고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를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남자는 지금의 요르단 지방으로 가서 예수께서 그에게 하신 일을 널리 전하였고 그에게 행하신 예수님의 일을 보고 놀라워 했습니다. 지난 주 설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들의 생명을 위협 하는 폭풍에 대해 겁을 먹었고; 예수님께서 간섭 하시기 전까지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던 것에 두려움을 가졌던 이야기 였습니다. 귀신 들린 그 남자는 예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드디어 그를 사로잡았던 것에서 놓여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던 이 여인은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여인 이었습니다. 병이 낫고자 이미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 해 보았고 병이 낫고자 의사가 처방한 것들을 해왔었습니다. 그러나 나아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녀의 혈루병은 12년 간 앓아왔습니다. 심한 병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유대인의 규율에 여인이 남자의 신체에 손을 대는 것은 규율을 어기는 일입니다. 특히나 피를 흘리는 여인이 다른 이의 몸에 손을 대다니요. 병을 낫게 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이런 규율을 어기고 그녀는 예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누군가 그분의 옷자락을 만진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녀의 믿음을 아셨습니다. 군중들은 밀리고 밀렸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분과 눈을 마주쳤을지 모르지만 그녀는 손을 뻗쳐 그분을 만졌습니다. 이건 다른 상황인거지요. 그녀는 믿음으로 그분을 만나기 원했고 그로 인해 온전해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녀는 그 분의 발 아래 엎드려 그녀가 한 것임을 말하였습니다. 그분을 만진 것은 그녀이고; 규율을 어겼음을 말하였습니다. 믿음은 그녀가 규율을 어기면서까지 믿음을 실천하게 하였으며 그래서 그분을 행하여 손을 뻗어 만지게 하였습니다. 장애물은 그녀의 믿음으로 깨끗이 없애버렸습니다; 그녀의 믿음으로요. “무언가 변화가 나에게 일어났어요 저는 알아요, 그 분이 저를 만지시고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다른 이야기는, 야이로 그가 아픈 것이 아니라, 그의 아픈 딸의 생명이 위독하여 근심과 두려움에 있었던 사건 입니다. 그는 회당의 지도자로 사람들에게 존경과 특혜를 누리던 사람 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유랑하며 설교하는 분의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폭풍을 잠잠케 하시고 귀신을 쫒아내시며 혈루병 여인을 낫게 하신 위대한 분 앞에 엎어졌습니다. 그기 그 분 앞에 끓어 엎드리게 한 건 뭐가 그리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이었을까요? 잠자는듯 일어나지 못하는 딸의 코마 상태? 아니면 죽음의 문제 였을까요? 어쨌건, 야이로의 절망은 그가 가진 사회적인 지위, 장애물이 아무것도 아니 것으로 걷어내게 하였으며 그를 예수님의 발아래 무릎을 끓게 하였습니다. 그는 딸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다 내어놓았습니다. 그에서 중요한 건 무엇이었을까요? 그의 딸의 생명 일까요 아니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지역 사회와 회당에서 특혜를 누리는 그의 지위 였을까요? 그는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간구하며 예수께서 그의 딸을 보아주시기를 거듭 간청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를 따라 가셨습니다. 병을 고침 받은 여인은 예수께서 삶과 죽음의 상황에 있는 딸아이를 보러 가는 순간에 있던 주변인이었습니다. 그 삶과 죽음의 문제는 우리들의 문제이고 교회가 듣고자 하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 이니까요. 우리들은 그 연인처럼 낫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어찌 되었지요? 소식을 전하는 이가 달려와 말하기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습니다! 예수님을 귀찮게 할 이유가 이제는 없습니다. 포기 하십시오. 희망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셨습니다, “두려워 말고 오로지 믿음을 가지라.” 기억 하십시오, 배 위의 제자들이 생명을 위협 하는 폭풍으로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때 말씀 하셨습니다, “두려워 말아라?” 이 말씀은 즉, 너희의 믿음은 어디에 있느냐? 나를 믿어라,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나를 믿으라. 딸아이가 죽은 것을 알고 사람들은 이미 울고불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오실 때까지 딸아이를 살려두고자 했던 그들의 극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요. 예수께서 너무 늦게 도착 하셨습니다. 그 딸은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자신감을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 12살 딸아이는 놀랍게도 죽음에서 일어났습니다. 숫자 12: 저는 궁금 합니다! 저는 항상 숫자에 관심을 가졌왔습니다. 특히 항상 성경에 나오는 숫자에요. 숫자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마가가 아무 의미가 없이 숫자 12를 말했다 하더라도 여러분, 여러분은 숫자12를 들으면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물론 이스라엘 12지파입니다. 마가가 그들에게 메시아가 오셔서 그들을 구원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에게 예수께서 오실 길에 장애를 없애라 하며 그리하면 너희가 고침 받고 회복되고 새로워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예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를 보여주는 겉치레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여러분과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에 눌리고 불편한 건강상태에 깨어지고 피 흘리며 죽음을 마주한 상태, 우리의 삶이 분열되고 부패하고 부도덕하며 이기적이고 병들어 죽음의 위기를 마주한 심각한 상황에 있는 우리들에게 그분이 얼마나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얼마나 한지 그 분이 위대한 분 이신지 대한 이야기 입니다. 얼마든지 우리들의 깨어진 예는 수없이 많지요. “우리를 옭죄는 무거운 것들, 그 무게에 짖눌려 수치심과 죄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이 손을 우리를 향해 내미시거나 우리가 그 분께 손을 내밀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더이상 이전과 같은 사람이지 않다고 하십니다. 무엇이 우리를 예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방해 합니까? 어떤 습관이 우리를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지 못하게 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혹은 교인들로인해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교회에서 환영 받지 못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거나 무시당하고 정죄 당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혹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살아온 삶으로 인해 스스로가 무가치하다고 느낄 수 도 있습니다. 결혼에 실패하고 삶이 엉망이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엉망이고 친구들과의 사이도 좋지 않고 약물에 중독이 되었다거나 교도소를 다녀온 적도 있는데 - 만약 이를 교회에 있는 어느 누군가가 이런 비밀을 알게 된다면 어쩌지요?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의 외모, 입은 옷으로 혹은 사회적인 위치로 판단하고 경제적으로 곤궁한 것으로 사람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실까요? 그리고 우리들 에게요? 이 모두가 이스라엘의 12지파 백성들로 희망도 없었던 누군가가 환영해주기를 바라고 예수님께서 만지셔서 낫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아니었던가요? 그 군중들, 그들의 가족들 친구들 조롱하며 말했지요, “지금 거기 간들 무슨 소용라고,” 그들에게 여러분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람 일 겁니다. 여러분도 보여지는대로 그 사실을 인정 하시겠지요;그 사람들 눈에는 죽은 사람이겠지요. 여러분의 믿음은 그들이 절대 받아들여주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아마도 우리가 이겨내야 할 장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봐야 할 것 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예수님께 닿을 수 있으며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데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그들이 예수님과 닿는 것을 방해 받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야야 합니다. 우리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바깥을 (다른 사람들을) 보는 것을 방해를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12지파의 이스라엘 백성 으로써 누가 그분을 만졌든 만짐을 당했든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은 그 분을 찬양 하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전의 우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변화되었다는 것은 치유 받은 사람과 그 기쁨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입니다. “그가 나를 만지시네; 오- 그분이 나를 만지시니 내 영혼에 기쁨이 넘치네! 무언가 변화가 있다는 것을 나는 아네, 그 분이 나를 만지시니 나는 온전하게 된다네.” 누가 이든지? 어떤 이유이든지? 우리를 그분께 가까이 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누가 외면당하고 환영을 받지 못합니까?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이것들을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이것이 저의 신앙입니다.
By Rev. Dal McCrindle 27 Jun, 2021
June 27, 2021 " CLEARING OBSTACLES?" Rev. Dal McCrindle 清除障碍 2021年6月27日 Clearing obstacles June 27th 2021 今天的朗诵让我想起了我在大学时学过的一首古老的福音赞美诗。嗯,其实它并不是那么古老,因为它只写于1963年,我上大学的那一年。这不是一首很多联合教会的人会听的歌,因为在那个时候联合教会是非常传统的,人们都避免表达自己的信仰。在福音派中很受欢迎的赞美诗“他感动了我”讲述了与耶稣相遇后的改变。《马可福音》中被耶稣感动的人物究竟发生了什么,至今仍是个谜; 但在赞美诗的歌词中,他们被沉重的负担所束缚,在罪恶感和羞愧之下,然后耶稣的手触摸了我,现在我不再是原来的我。 在今天的一个案例中,耶稣触摸了失败的人,而在另一个案例中,寻道者伸出手触摸了他。然而,两者的结果都是一样的——他们被治愈了! 马可告诉我们,与耶稣相遇会带来重大的改变。你们这些有麻烦的人,你们这些有问题的人不管这些问题是与健康有关的还是其他的,只要相信耶稣,事情就会发生。“他摸了我; 啊,他感动了我,啊,喜悦充满了我的灵魂! 发生了一些事情,现在我知道了,他抚摸了我,让我完整了。” 在60年代,很少有联合教会的人想要表达他们认为耶稣感动了他们。当然,我们不想承认我们不完整; 在他们的弥补中缺少了一些东西。为什么,为什么那是纯粹的原教旨主义。然而,今天的故事是关于治愈、感动和摆脱我们的外壳。 除了触摸的双重治愈,出血的女人的故事和睚鲁(Jairus)抚养女儿的故事还有其他相似之处。都涉及到女人,都提到了数字12。在这两种情况下,都有人拜倒在耶稣的脚下。在一个例子中,是女人,在另一个例子中,是女儿的父亲。 布道可以被传讲,也可以通过触摸的力量发生奇迹。这段经文对于那些参与近几十年来出现的疗愈触摸事工的人来说,将是一个很好的读物。一位观察人士指出,许多人,主要是老年人,经常去教堂,这样他们就可以被触摸; 在他们的生活中没有人提供这种重要的人类商品——另一个人的接触。在门口迎接,有一个握手,也许接受一个拥抱或碰一下肩膀——人与人之间的接触让人的生活会有所不同,在一个人的生活——只是与另一个人联系。我听说,新冠肺炎大流行期间最大的损失是缺少与他人的接触! 一些布道集中在耶稣治愈的能力上,用这段经文作为证据,证明耶稣,神的化身和代表,拥有生与死的权力。故事的开头是说耶稣从他的渡海之旅回来,在那里他平息了海浪,平息了风浪。另一边,他赶走了一个住在墓地里的人身上的魔鬼,这个人被附身了,经常伤害自己。现在,在见证了耶稣超越元素和邪恶力量的奇迹之后,马可呈现了耶稣,他能治愈我们的软弱,甚至那些威胁生命的人; 因为这个年轻的女孩不是已经死了,就是离死亡很近了。“耶稣,”马可说,就是他。他就是我们一直在等待的人。耶稣是弥赛亚,他来是为了颠倒世界,使神的国临近。看他。需要帮忙吗? 让他碰你,甚至碰他! 没关系。这里有如此多上帝的力量和同在,只要建立联系,就可以变得完整。 “自从我见了这位蒙福的救主,他洁净了我,使我痊愈。我永不停止赞美他; 我要在永恒中呐喊。” 耶稣上船的时候、那被鬼附著的人、求耶稣和他同去。耶稣对他说,你回家去,到你的朋友那里,将主为你所作的大事,向你所施的慈爱,都告诉他们。于是,那个人离开了,开始在现代约旦到处宣扬耶稣为他做了多少事,每个人都很惊讶。 在上周的故事中,门徒们担心他们的生命安全; 暴风雨威胁着他们的生命,直到耶稣出面干预。被鬼附著的人没有办法从耶稣那里寻求帮助,但他还是从压迫者那里被释放了。今天,那亲近耶稣的女人并没有什么可失的,她已经试过了所有的事; 她倾家荡产,在医生那里忍受了那么多却毫无成效。她也好不到哪里去。出血持续了12年; 不是小毛病。伸出手去碰一个人是违反犹太律法的,尤其是在流血的时候。曾经阻碍治愈的规则被打破了; 她抚摸着耶稣。耶稣感觉到了。他感觉到她的信仰。人群挤了进来。很多人可能会和他联系,但她伸出手去触摸他,想要一些不同的东西。的确,她是在寻求接触; 寻求完整性。在他面前,在他脚前俯伏。讲真话。是她碰到了他; 她违反了规定。信仰使她打破了世俗的惯例,她大胆地伸手去触碰。因为她的信念,障碍被清除了; 她相信。“发生了一些事情,现在我知道了,他抚摸了我,让我完整了。” 另一方面,睚鲁(Jairus)虽然没有生病,却担心女儿的性命。作为一个犹太教堂的领导,他习惯于接受荣誉和特权,但他倒在这个巡回传教士的脚下! 在风暴中幸存,驱走我们的恶魔,治愈流血,太棒了。但如果是非常严重的事情呢? 昏迷? 死亡? 不知何故,在绝望的驱使下,睚鲁清除了他的社会障碍,拜倒在耶稣的脚下。他没什么好失去的,除了女儿。什么更重要? 是他女儿的生活,还是他在社区和犹太教堂中的地位、地位和特权? 他倒在耶稣面前,一再恳求他来! 耶稣。对女人的治疗是一种旁听,耶稣来到了生命和死亡的真实场景,我们,教会想要听到的问题,因为我们的问题是生命和死亡。 那位妇女的病好了,我们有了希望。但你猜怎么着? 一个信使的到来。 “没用的,你女儿已经死了!” 为什么还要麻烦老师呢?” 放弃吧,你的担心是没有希望的。耶稣听见说:“不要怕,只要信。” 门徒在船上害怕性命的时候,耶稣问他们:“你们害怕什么?” 比如,你的信仰在哪里?相信我。抛开你对希望的阻碍,相信我。 人们已经在哭泣哀号。即使是勇敢的努力也已经太晚了。那女孩死了。他们嘲笑他的自信。12岁的女孩站了起来,他们被惊呆了。 12: 我想知道! 我一直很注意数字,尤其是圣经中提到的数字。我说,找找别有用心的动机。即使马可没有使用数字12的意图,当我们听到数字12时,我们会怎么想? 当然是以色列的12个支派。那些马可说弥赛亚来拯救的人。以色列的百姓啊,请清除那些阻碍你去见耶稣的障碍,你就可以得医治,恢复,活过来。这个奇迹故事并不是要向世人展示耶稣有多伟大,而是向世人展示耶稣对你,对人民有多伟大; 你们背负着沉重的负担,不健康,不完整,流血,甚至接近死亡,在自己的腐败,怜悯,自私,病态中濒临死亡的危险。不管是什么,只要你能说出它的名字,它就能“让你背负沉重的负担,让你被内疚和羞愧压垮。” “伸出手去触摸耶稣,或者被耶稣触摸,我敢打赌你将不再是以前的你。” 那么是什么阻碍人们接近耶稣呢? 是什么阻止你伸出手去触摸他的衣角? 有些人与教会或教会的人有过不好的个人经历; 有些人感到不受欢迎,被忽视,被评判。有些人因为自己在生活中的所作所为而感到不值得。也许是一段失败的婚姻,一生中的一次轻率之举,一段扭曲的关系,变质的友谊,一种瘾,一段监狱时光——如果教堂里的某人发现了这个秘密怎么办? 然后会发生什么? 有些人因为他们的衣着、地位或缺钱而感到被排斥和评判。耶稣会对他们说什么? 给我们吗? 这些人不正是十二支派的儿女吗?他们无可救药地需要被欢迎,被触摸,被治愈? 人群,他们的家人和朋友很快嘲笑他们,“去那里是没有用的,”对他们来说,你是无法接受的。你不妨接受这个事实; 在他们眼里,你已经死了。你永远不会被他们接受。 我们可能要考虑我们需要克服哪些障碍才能接触耶稣,我们也可能要考虑我们在别人面前设置了哪些障碍,禁止他们接触耶稣。内心的我们很难看到我们是如何阻挡外界的。但作为12个孩子,我们的任务是赞美他,因为我们已经不一样了; 而这种转变的一部分就是与那些需要治愈的人分享喜悦。他感动了我,啊,他感动了我,啊,我的灵魂充满了欢乐。发生了一些事,现在我知道了,他感动了我,让我完整了。到底是谁? 不管出于什么原因,都不能来这里? 排除在外;不欢迎? 应该没有! 想想这些事情。至少我是这么看的。
By Rev. Dal McCrindle 26 Jun, 2021
June 27, 2021 " CLEARING OBSTACLES?" Rev. Dal McCrindle Today’s readings reminded me of an old Gospel hymn, I learned while in college. Well, actually it wasn’t all that old of a gospel hymns as it was written in 1963, the year I went to University. It’s not a song that many United Church folk would have heard since in those days United Churches tended to be very traditional and emotional expression of one’s faith was to be avoided. The hymn, “He touched me” popular among evangelicals spoke of being changed through an encounter with Jesus. Exactly what happened to the characters in Mark’s Gospel as they were touched by Jesus remains a mystery; but in the words of the hymn they were “Shackled by a heavy burden, ‘neath a load of guilt and shame, then the hand of Jesus touched me, and now I am no longer the same.” In one of today’s cases, Jesus touched the failing individual and in the other, the seeker reached out and touched him. However, in both, the result was the same – they were healed! Mark tells us that encounters with Jesus result in significant changes. You who are troubled, you who have problems whether they are health-related or otherwise, put your faith in Jesus and something will happen. “He touched me; O he touched me, and Oh the joy that floods my soul! Something happened, and now I know, he touched me and made me whole.” Back in the sixties, few United Church people ever wanted to express something as if they thought that Jesus touched them. Certainly, we wouldn’t have wanted to admit that we weren’t whole; that something was lacking in their make up. Why, why that was pure fundamentalism. Nevertheless, today’s stories are about healing, touching and breaking away out from our shells. Besides the double healing by touching, there are other similarities in the story of the woman with the hemorrhage and the other story of the raising of Jairus’ daughter that is sandwiched between. Both involve women and both speak of the number 12. In both, someone falls to Jesus’ feet. In one instance, it is the woman and in the other, it is the daughter’s father. Sermons could be preached and have been on the miracles that can happen through the power of touch. This passage would be a great reading for those who are involved in the Healing Touch Ministry that has emerged during recent decades. One observer has noted that many, primarily seniors often go to church so they can be touched; not having persons in their lives who provide this vital human commodity – another human’s touch. Greeted at the door, having a hand shaken, maybe receiving a hug or a touch on the shoulder – to make human contact makes all the difference in one’s life – just to connect with another human being. I’m hearing that the biggest loss felt during these Covid-19 pandemic times is the lack of touching from others! Some sermons have focused on the power of Jesus to heal, using this passage as proof that it is Jesus, God’s Incarnations and representative who holds power over life and death. The story began by indicating that Jesus had returned from his across-the lake-experience where he had stilled the waves and calmed the winds. On the other side, he had driven out the demons from a man who was possessed and who lived in a cemetery, often harming himself. Now after having seen miracles that demonstrated Jesus’ power over the elements and evil forces, Mark presents Jesus who can heal our infirmities, even those that threaten life itself; for either the young girl had died or was very close to it. “Jesus,” says Mark, is the one. He is the one, we’ve been awaiting. Jesus is the Messiah the one who came to turn the world upside down and bring the kingdom of God, very near. Look to him. Need help? Let him touch you, or even touch him! Doesn’t matter. There’s so much of God’s power and presence here, just make the connection and be made whole. “Since I met this blessed Savior, since he cleansed and made me whole. I will never cease to praise him; I’ll shout it while eternity rolls.” As Jesus was getting into the boat, the man who had been possessed by demons, begged him that he might go with him. But Jesus told him, to “Go home to your friends, and tell them how much the Lord has done for you and what mercy he has shown you.” But, the man went away and began to proclaim throughout what is modern Jordan how much Jesus had done for him and everyone was amazed. In last week’s story, the disciples feared for their life; the storm threatened their lives until Jesus intervened. The demon-possessed man had no way of seeking help from Jesus, and yet he was released from his oppressors. Today the woman who reached out to Jesus had nothing to lose, she had already tried everything else; spent all she had, endured much without success from the doctors. She was no better. Her hemorrhage had lasted 12 years; not a minor affliction. It was against all the Jewish rules to reach out and touch a man, especially while bleeding. The rules, which had become obstacles to healing are broken; she touched Jesus. And Jesus felt it. He felt her faith. The crowd pressed in. Many would have made contact with him, but she reached out and touched him for something different. In faith, she reached seeking contact; seeking wholeness. She falls before him, at his feet; tells the truth. It was she who had touched him; she who had broken the rules. Faith enabled her to breach accepted practice and she reached, daringly reached and touched. The obstacles were cleared away because of her faith; her believing. “Something happened and now I know, he touched me and made me whole.” On the other hand, Jairus, while not ill himself, feared for his daughter’s life. A leader of the synagogue, he was used to receiving honours and privilege, but he falls at the feet of this itinerant preacher! Surviving storms, driving our demons, healing bleeding, wonderful. But what about something that’s really serious? Coma? death? Somehow, Jairus, driven by desperation was able to clear his societal obstacles and throw himself at the feet of Jesus. He has nothing to lose, except a daughter. What’s more important? His daughter’s life or his status, rank and privilege in the community and synagogue? He falls before Jesus and begs him to come, repeatedly! Jesus follows. The healing of the woman is kind of an aside while Jesus travels to the real scene of life and death, the issues that we, the church want to hear about, ‘cause our issues are life and death. Our hopes are raised as the woman is healed. But guess what? A messenger arrives. “It’s of little use, your daughter has died! Why trouble the teacher any longer?” Give up, your concern is hopeless. Jesus hears and speaks, “do not fear, only believe.” Remember, while in the boat as the disciples feared for their lives, Jesus said, “What are you afraid?” Like, where’s your faith? Trust me. Put your obstacles from hoping aside and trust me. People were already weeping and wailing. It was much too late for even a valiant effort. The girl is dead. They laugh at his confidence. The 12-year-old girl rises and they were overcome with amazement. Twelve: I wonder! I’ve always paid attention to numbers especially when mentioned in the Bible. Look for some ulterior motive I say. Even if Mark intended nothing by the use of the number 12, what do we think when we hear of the number 12? Of course, the 12 tribes of Israel. The people whom Mark has said the Messiah has come to save. All you people of Israel, clear away the obstacles that inhibit you from coming to Jesus and you will be healed, restored, enlivened. This miracle story isn’t so much about showing how wonderful Jesus was but showing how wonderful Jesus is, for you, the people; you who are burdened, unhealthy, un-whole, bleeding even close to death, in danger of dying in your own corruption, pity, selfishness, morbidity. You name it, whatever it is that “shackles you by a heavy burden, weighs you down with guilt or shame.” reach out and touch or be touched by Jesus and I’ll bet you’ll no longer be the same. So what are the obstacles that keep people from reaching Jesus? What inhibits you from reaching out and touching the hem of his garment? Some people have had personal bad experiences with the church or its people; some have been made to feel unwelcome, ignored, judged. Some people feel unworthy because of their own actions in life. Maybe a failed marriage, one of life’s indiscretions, a distorted relationship, friendship gone sour, an addiction, a time in prison – what if someone in church discovered that secret? What would happen then? Some people feel ostracized and judged because of their clothing, status, or lack of money. What would Jesus say to them? To us? Are not these people precisely the children of the 12 tribes, who are hopelessly in need of being welcomed, touched and healed? The crowds, their families and friends are quick to deride them, “no use bothering going there,” to them you are beyond acceptance. You might as well accept the fact; you’re as good as dead in their eyes. You’d never be accepted by them. We may well have to consider what obstacles we need to overcome so we can reach out to Jesus AND we may well have to consider what obstacles we have set before others that prohibit their touching him as well. It is difficult for us on the inside, to see how we block those on the outside. But as children of the 12, who have touched him and been touched by him, our task is to praise him, for we are no longer the same; and part of that transformation is to share that joy with those who need to be healed. He touched me, O he touched me, and Oh the joy that floods my soul. Something happened and now I know, he touched me and made me whole. Just who is out there? That cannot for whatever reason, come here? Who is excluded; not welcome? There should be none! Think on these things. At least that’s the way I see it.
By Rev. Dal McCrindle 23 Jun, 2021
June 20, 2021 " JESUS DON'T YOU CARE?" Rev. Dal McCrindle Jesus, don’t you care? 주여, 저희한테 신경도 안쓰세요? June 20 2021 “하나님, 저희한테 신경도 안쓰세요?” 여러분 이런 말이나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해보셨습니까? 믿음이 좋다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경을 쓰시는지 아니신지 의문 합니다. 믿음 좋다는 감리교 창시자인 위대한 존 웨슬리도 그의 평생토록 이런 의문을 해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의문을 가진다는 것 말고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이유는 우리가 인생에 겁을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두려움을 가지는 걸까요? 왜 우리가 두려워 하는 걸까요? 우리들의 삶 속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라고 예수께서 우리를 물으십니다 -우리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무섭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잠시 주무시느라 제자들의 생명이 위협 당하는 상황을 알지 못하시는 것 같아서 예수님과 작은 배에 탄 제자들은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지난 화요일에 제가 20년 전 심장 수술을 한 날이었는데 그 때 제가 무섭지 않았다라고 여러분들께 얘기를 한다면 저는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재가 잔뜩 주눅이 들었었을까요? 예. 그랬었습니다. 그러면 저의 신앙이 도전을 받았을까요? 아니요 그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 저랑 같이 계신거지요?” 라고 물었습니다. 불안과 좌절은 많은 생각들을 불러 일으킵니다 –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 때문에 혹은 불안정한 미래에 대해 불안함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뭘 해야 할까요? 어디에서 방향을 바꾸어야 할까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불안해 하면서, 사나운 맹수가 우리를 공격해 우리를 찢어버리면 어쩌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갑니다. “ 아직도 믿음이 없으십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지금 우리가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 처럼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제자들은 갈릴리 호수에서 강풍이 불어 집어삼킬 듯한 위협으로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마가복음에서 하나님의 주신 성령을 그들에게 주신 것을 말씀 하신지 채 얼마 되지 않아 제자들은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갓 태어난 어린 아기 같은 교회를 강풍 속에 밀어 넣으셨습니다. 마치 인생 과도 같지 않으십니까? 막 무언가가 시작되고 곧은 길 위를 가는 듯 한데 폭풍을 맞이하고 – 시련이 2 Jesus, don’t you care? 주여, 저희한테 신경도 안쓰세요? June 20 2021 발생하는거지요. 그런데 그 위력을 가늠 할 수가 없는 폭풍을 만난 상황에서 두려움이 가라앉게 되나요? 웨스트 벤쿠버는 안전한 동네이지만 가끔 심한 바람이 불 때면 바도가 높고 커 위협적입니다. 또 들판에서 돌풍이 생겨 우리 살림살이들을 하늘로 휙 잡아당긴다면 우리는 그 상황이 고마울 리가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번드르르하게 말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상황들이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우리의 인생이 위협을 받는 일인데요. 우리의 삶이 어려움에 처할 때 마다 “주여, 대체 저희는 안중에 없으신 거예요? 교회가 얼마나 엉망인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엉겼는지 - 주여 저희를 돌보고 계시지 않으신건가요?” 묻습니다. 강풍을 만난 인생은 어떤 걸까요?: 항상 돈은 모자라고, 돈이 들어 올 곳은 없고, 장사도 안되고 이자률은 불안정하고, 일자리도 없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지도 못합니다. 일도 집도… 고등학교 또 대학을 졸업 합니다 (졸업식을 하면서 앞으로의 다가 올 것들에 대해 희망을 가지는 동시에 막막하게 느껴서 겁이 나면서 지금 졸업 후 뭐가 어떻게 된다는 거지? 싶습니다). 한번도 평안한 적 없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이란,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타인, 리비아, 북한, 중국 그리고 쿠바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요? 요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인질을 잡는 것과 테러와 코비드! 커가는 아이들, 나이가 들어가시는 부모님에 대한 안전함을 더욱 요구하게 되고 또한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삶을 꾸려 나가는 능력이 떨어져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혹은 요양원으로 가게 되는 것에 대해서 또는 삶을 위협 하는 죽음의 질병을 갖게 될까 하는 불안함을 가지게 됩니다. 바다 한가운데 물결에 흔들거리는 부숴지기 쉬운 작은 배가 물결의 집어 삼킬 듯한 속에 있으니 침착함을 찾기는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우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두려움은 죽음과 세금을 내는 것처럼 우리 인생의 일부 입니다. 마치 우리의 보호 본능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자리 하고 시간이 감에 따라 그 정도가 자라가게 합니다.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두려워 합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통제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면 하나님께 향하고 서로를 공격(테러) 하는 것을 거두어 들이려 합니다. 3 Jesus, don’t you care? 주여, 저희한테 신경도 안쓰세요? June 20 2021 우리는 우리가 겁을 내는 것을 감추고; 또는 그것을 부인하고 마치 두려움이 없는 듯 행동합니다. 행복한 휘파람을 불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우리의 일이나 여가 활동에 집중하고 먹고 마시고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미래이고 다가 올에 대해 알 길이 없지만 우리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듯 행동 합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일을 고만 두신 게 아닐까 의문 하기도 합니다. 저는 더러 재즈 찬양 가수 루이즈 로즈의 노래 “하나님은 작은 새에게 보고 계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 - 그런데 정말 그러고 계실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흥미를 잃으셨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알 때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런 모든 위장술에도 하나님께서는 속아넘어가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우리를 아시고 우리의 승리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겁을 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성경에 여기저기를 보면 하나님의 천사가 사람들에게 나타난 구절들이 있습니다. 주로 이런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겁내지 마라, 두려워 말아라!” 인생의 폭풍을 만날 때 우리는 그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고 안전한 곳을 찾습니다! 마가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배 위에 있었던 일을 기록 할 때가 막 교회 공동체가 생겨 날 때로 버려진 듯하고 홀로 인 듯 한 생각을 가질 때 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다시 온다 약속 하셨습니다만 아직 오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교회는 살아가려 홀로 애쓰면서 온갖 고문과 박해를 견디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따르려 합니다.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그들의 믿음에 따라 순교 하였습니다. 폭풍 속 배 위에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이제 자라기 시작한 공동체는 왜 예수님께서 그들을 버려두셨는지를 사력을 다하여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왜 침묵하시고 마치 어느 다른 곳에서 주무시고 계신 듯 인생의 폭풍이 교회라는 배가 어려움을 겪는 것을 개의치 않으셨을까. 하나님께서는 정말 어디에 계신 것 일까...? 마치 예수님께서 신경도 쓰시지 않으시고 염려도 하시지 않으시고 계신…듯? 마가는 그 젊은 교회와 우리들에게 묻습니다. 왜 두려워 하느냐, 꼼짝도 하지 못하느냐? 왜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바람과 바다는 잠잠하라!” 4 Jesus, don’t you care? 주여, 저희한테 신경도 안쓰세요? June 20 2021 물을 잠잠케 하신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신성성을 드러내는 마법 그 이상의 이야기 입니다. 우리들의 인생에서 그 어떤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예수께서는 평화와 잠잠케 하실 수 있습니다. 염려와 불행과 알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을 오가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첫 부분이나 마지막에 말씀 하십니다: “평안하라! 잠잠하여라!” 믿음이란, 혼란의 바다를 지나면서 침착하고 믿음을 따라 사는 사람의 삶을 살아내고; 그들이 박해를 당하더라도, 망설이는 순간에도 엄청난 두려움과 죽음의 때에도 의연할 수 있게 하는 힘 입니다. 마가는 말씀을 읽는 사람들에게 예수께서는 주의를 기울이시고 심지어 주무시는 동안에도 우리를 살피신다는 것 우리로 하여금 부활하신 예수님께 도움을 구하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디로 가버리신 것이 아니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 입니다. 무엇이 우리들의 가장 큰 두려움 인가요? 어떤 일을 알지 못한단 것인가요? 두려움 그 자체 인가요? 그 두려움이 무엇인지 하나님께 말씀 하시고 예수께로 가지고 오셔서 기도하십시오. 여러분 이 찬송을 기억 하십시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시험과 유혹을 겪으시나요? 어려움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절대 용기를 꺾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로 간구하라.” 그런데 하나님, 저는 이런 상황이 두렵습니다; 직장을 잃을까 두렵고, 수술을 앞두고 있어서 무섭고 저의 가족에 문제가 생길까 혹은 결혼 생활이 깨어질까 겁이 납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염려되고 제 인생이, 우리 사는 이 환경이, 세상이, 나라가, 제가 사는 지역사회와 우리 교회와 교인들이 염려 됩니다. “우리는 나약하고 근심이 많으며 근심을 안고 사는 걸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이시며 안식처 되십니다. 모든 것을 주께 가지고 와 기도로써 구하십시오.” 우리의 기도로써 예수님을 깨워 우리 마음의 폭풍을 잠잠케 해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예수께서도 그 어떤 희망도 없이 보일 때 믿음으로 그분의 두려움을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께서는 이기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와 절망을 5 Jesus, don’t you care? 주여, 저희한테 신경도 안쓰세요? June 20 2021 받아들이셨습니다. 믿음이란,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희망을 하나님께 두고 믿는 것 입니다. 어느 등반가가 절벽에서 떨어졌습니다. 나락으로 떨어지기 바로 직전에 그 사람은 바위에 붙어있는 나뭇가지 하나를 붙잡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위기를 빠져나올 수 있을까 죽을 힘을 다하여 허둥거리다가 그 사람은 소리쳤습니다. “하나님, 왜 안도와주세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웅장한 -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잡은 그 가지를 놓아라!” 잠시의 무시무시한 두려움이 지나간 후, 그 사람은 한 번 더 고래고래 소리 질렀습니다, “거기 누구, 아무도 없습니까?” 우리가 두려움을 가지고 그 두려움으로 어떻게 하면 우리의 두려움을 이겨볼까 하는 건 잘못 된 것이 아닙니다. 그 두려움이 우리는 움직일 수도 몸이 굳어지기도 좌절하고 삶에 영향을 끼치나요?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이는 우리가 너무 순진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 이라거나 위험을 잊어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보고 신뢰해야 할 것에 중심을 두라는 말씀 입니다. 이것이 믿음이며 신뢰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되신 때 부터요…모든 것이 결국은 다 주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신뢰하는 것은 위험하고 문제를 만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우리에게 주실 것을 무엇이지를 보지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폭풍 가운데 침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이 두려움을 이길 능력을 주시고 견디게 하십니다; 이전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앞으로 일어날 말들과일들을 이기게 해주십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폭풍이나 혼란 그리고 이 세상 위험에 대한 책임을 강요하지 않는 대신 우리에게 힘을 주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신뢰하게 하며 다른 사람들이 선함을 믿으며 예수의 삶이 우리의 모범이 되셔서; 위험을 감수하고 잡은 가지를 놓은 믿음; 우리가 제어하지 못하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우리는 순례자 임을 기억하고, 사랑하고, 섬기고 용서하고 사람들을 신뢰하며 사는 것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구원 받은, 사랑 받는 사람들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세상의 폭풍을 이길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6 Jesus, don’t you care? 주여, 저희한테 신경도 안쓰세요? June 20 2021 오랜 찬송가 “내 안에 거하라”는 최고의 말씀입니다: “나를 축복하시는 주와 함께라면 주안에서 아무 두려움이 없다; 어떤 대적도 두렵지 않아요. 질병도 견딜만 하고, 눈물도 고통도 없습니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은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저는 넉넉히 사망을 이겨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 합니까? 아직도 믿음이 없으십니까? 예수께서 말씀 하십니다, “평안하라… 잠잠하여라!” 이것이 저의 신앙입니다!
By Rev. Dal McCrindle 18 Jun, 2021
June 20, 2021 " JESUS DON'T YOU CARE?" Rev. Dal McCrindle 耶稣,你不在乎吗? 2021年6月20日 Jesus, don’t you care? June 20 2021 “耶稣啊,你不在乎吗?” 你有多少次听到自己这样说或这样想过? 一些最忠实的信徒怀疑耶稣的关心。即使是伟大的卫理公会创始人约翰卫斯理,在他的一生中也有怀疑。但有疑虑是一回事; 担心自己的生命是另一回事。那么我们为什么会害怕呢? 你为什么害怕? “你还没有信心吗?” 耶稣的回答让我们停下脚步——我们害怕,因为有太多的东西让我们害怕。当以色列人逃离埃及,在荒野中漂泊了40年的时候,他们非常害怕。耶稣的门徒们在船上很害怕,因为他们的主人正在打盹,似乎没有意识到他们的小船正面临着危险。 如果我告诉你我不害怕20年前的心脏手术,也就是上周二,那就是在骗你。它威胁到我的信心了吗? 是的! 它威胁到我的信仰了吗? 不! 但它确实使我在脑海中呼唤: “耶稣,你在吗?” 许多事情的发生都会带来痛苦或绝望——我们可能会担心未知或不确定的未来。我们现在怎么办? 我们该转向哪里呢? 我们如何生存? 我们小心翼翼地向前走,好像有野兽要扑过来消灭我们似的。“你还没有信心吗?” 门徒们当时的处境和今天许多人的处境一样。他们害怕席卷加利利海的暴风雨的强度和猛烈。马可很快告诉我们,神的灵释放了力量在门徒身上,他们发现自己处于危险之中。教会在它的幼年时期就被推入了人生的风暴之中。生活不就是这样吗? 就在我们认为事情已经开始或者已经步入正轨的时候,风暴就来了——麻烦正在酝酿之中。但担忧是否能平息这样的风暴,尤其是在它们的影响还不为人知的情况下? 在西温哥华很安全,我们可能不会喜欢海上的暴风雨,除非我们是船夫; 或者是在大草原上旋转的危险,将我们的生计扭曲到天空中。它们可以是毁灭性的,可怕的和威胁生命的。“耶稣啊,你不在乎吗?” 教堂一团糟; 我的生活一团糟——“耶稣啊,你不在乎吗?” 生命的风暴,它们是什么样子的生命? :预算不足,经济不稳定,市场上的平静,不稳定的利率,工作不稳定,新恋情,工作或家庭,高中或大学毕业(这在当时带来巨大快乐的同时,造成了现在的恐惧是什么?) 那世界上持续的动荡呢? 伊朗、伊拉克、黎巴嫩、叙利亚、巴勒斯坦、以色列、利比亚、朝鲜、中国、古巴最终会发生什么? 如今,有一种威胁笼罩着任何形式的旅行: 劫持人质,恐怖主义,新冠病毒! 成长中的孩子、年迈的父母对我们的需求和不确定性都在增加,同时我们自己也在为变老、可能失去对生活的控制、搬进护理机构、或面对危及生命的疾病和接近死亡而焦虑。像门徒一样,我们都发现自己被推入大海的中间,在平静的航行中,我们的船似乎太小了,太脆弱了,无法抵抗来自上方、下方或周围的摇摆、摇摆和压力! 恐惧就像死亡和税收一样是生活的一部分。这很可能是一种自然的内在保护机制,在漫长的进化过程中发展出来的。大多数人都会害怕一些东西。当人们无法控制局势时,他们会求助于上帝,或者求助于他人,以减轻他们所遭受的恐惧。 我们做各种各样的事情来掩盖我们的恐惧; 我们否认它,甚至假装它不存在。我们吹着欢快的曲调,与自己交谈,沉浸在工作和活动中,吃东西,或者在未知的不确定的未来来临时努力表现得自信! 有时我们甚至会向上帝呼求,想知道上帝是否已经不再关心或注视我们。偶尔,我也会听到爵士福音歌手路易丝·罗斯唱 “他的眼睛盯着麻雀”和“我知道他在看我”——但他真的在看我吗? 当我们害怕上帝对我们失去兴趣时,我们的幸福在哪里? 尽管有这些伪装,上帝是不会被愚弄的。上帝创造了我们,了解我们,看到我们的虚张声势。上帝理解我们的恐惧。散布在圣经中的,都是上帝的天使或使者接近人们的事件,通常第一句话是: “不要恐惧,不要害怕!” 但生活的风暴袭击我们,我们四处奔波,寻找安全和出路! 当马可写下耶稣和海上门徒的故事时,这个襁褓中的教会已经开始感到被遗弃和孤独。耶稣应许要再来,却还没有来。该教会相信耶稣的教诲,并试图以此为生,但却遭到迫害、威胁和折磨。许多信徒已经为他们的信仰而牺牲了。就像在暴风雨的湖面上的门徒一样,这个年轻的社区绝望地试图理解为什么耶稣抛弃了他们。为什么耶稣沉默不语,就好像他在什么地方睡着了一样,没有意识到生命的风暴正在袭击他们那在动荡时期航行的教堂小船。上帝到底在哪里? 就像耶稣睡着了,心不在焉,漠不关心? 马可问年轻的教会,随后又问我们,为什么你们如此恐惧,无动于衷? 你们为什么还缺乏信心呢? “风浪,平静下来!” 这个故事的意义远远超出了神力的神奇展现。无论我们的生活遇到什么风暴,耶稣都能给我们带来平安和平静。因忧虑或不幸、对未知的恐惧而辗转反端:开始或结束; 耶稣说: “平安! 静下心来!” 信心能使海上的惊涛止息,能使人渡过基督徒日常生活的试炼; 甚至带着他们经历了残酷的迫害,优柔寡断,恐惧和最大的恐惧,死亡本身。马可提醒他的读者,耶稣是专注的,即使睡着了,可以在需要的时候被召唤,因为耶稣已经复活了! 没走! 因此,我们可以相信上帝没有忘记人类。 我们最大的恐惧是什么? 是未知的东西吗? 是恐惧本身吗? 用祷告说出他们的名字,带他们去见耶稣。记住我们的赞美诗: 耶稣是我们的朋友? 我们有试炼或试探吗? 有什么麻烦吗? 我们永远不应该气馁。在祷告中把它交给主耶稣基督。” 但是主耶稣基督,我害怕开始新的事情; 我害怕失业,害怕手术,害怕家庭和婚姻状况的变化。我担心我孩子的未来,我担心我的生活。我为环境、我们的世界、我们的国家、我们的社区、我们的教会和会众担忧。 “我们是否软弱而沉重,被忧虑所拖累。救世主基督是我们的避难所。在祷告中向主祷告。”让我们用祷告唤醒耶稣,让他平息我们心中的风暴。耶稣面对自己的恐惧,即使在没有希望的时候也信靠神。在客西马尼的花园里,耶稣接受了一杯苦难,这杯苦难使人类摆脱了局限。信心,就是在没有理由信靠上帝的时候,对所有的希望抱有希望。 有一个登山运动员从陡峭的悬崖上摔下来的故事。就在那名攀登者要从我们的视线中消失到一片虚无之中时,他设法抓住了岩石外的一根小树枝。在拼命想办法到达安全地带后,那名登山者喊道: “耶稣,你不在乎吗?” 沉默了一会儿,一个响亮的、听起来像神圣的声音雷鸣般地说:“放开那根树枝!” 在一阵可怕的焦虑的沉默之后,那攀登者又大声喊道: “有没有其他人在听?” 恐惧没有什么错,我们的生存取决于它——这是我们如何应对恐惧。我们是被束缚、瘫痪、沮丧还是鼓舞? 相信上帝,不是天真的接受或漠视危险,而是对现实核心的善的关注。它是一种信念,一种信任; 一种既然上帝就是上帝的.......事情最终会解决的,永远的! 会有危险,会有麻烦。我们甚至可能看不到上帝有一天会创造什么,但上帝会平息风暴。上帝的灵及力量赐给那些敬畏上帝的门徒,使他们能忍耐。去做,说,做以前不可能做的事。 这样的信心并不能免除我们对这个世界上的风暴、动荡或危险的责任,而是赋予我们力量,我们被召信靠上帝,信靠上帝的子民,相信他人的整体良善,接受耶稣作为我们生命的榜样; 去冒险,放开树枝; 把安全和控制抛在脑后; 做一个虔诚的人,一个有爱心的人,一个服务的人,一个被宽恕,被拯救和信任的人。上帝给了我们力量和勇气来度过生命中所有危险的风暴,我们得到了救赎和爱。 古老的福音赞美诗 “与我同在” 说得最好: “有你在身边祝福,我不怕敌人; 病痛没有重量,眼泪没有痛苦。死亡的刺在哪里? 在哪里,埋葬胜利? 只要你和我在一起,我还是会胜利的。"所以,“我们为什么会害怕?” 我们还没有信心吗。耶稣说: “平安……平静内心! 至少我是这么看的!
By Rev. Dal McCrindle 18 Jun, 2021
June 20, 2021 " JESUS DON'T YOU CARE?" Rev. Dal McCrindle “Jesus, don’t you care?” How many times have you heard yourself say or even think that? Some of the most faithful have doubted Jesus’ concern. Even the great John Wesley, founder of Methodism had doubts throughout his life. But having doubts is one thing; fearing for one’s life is another. So why are we afraid? Why are you afraid? “Have you still no faith?” Jesus’ response stops us in our tracks – we’re afraid ‘caused there’s much to fear. While escaping from Egypt and spending 40 years wandering in the wilderness, the Israelites were afraid. The disciples of Jesus in the boat were afraid while their master snoozed, seemingly unaware of the dangers that threatened their small craft. I would be lying to you if told you I wasn’t afraid of my heart surgery 20 years ago, last Tuesday. Did it threaten my confidence? Yes! Did it threaten my faith? No! But it did cause me to call out in my mind: “Jesus are you there?” Many things happen that can bring anguish or despair - we might worry about the unknown or the uncertainty of the future. What shall we do now? Where shall we turn? How shall we survive? Cautiously, we proceed, as though some wild beast was about to pounce and destroy us. "Have you still no faith?" The disciples were in such a situation as are so many today. They feared the strength and violence of a storm sweeping across the Sea of Galilee. No sooner does Mark tells us about the power unleashed by God’s Spirit on the disciples and they find themselves in danger. The church at its infancy is thrust into one of life’s storms. And isn’t life like that? Just when we think things have begun or got onto a straight and sure tack, then the storms hit – trouble is a-brewing. But does worrying quell such storms especially when their impact is somewhat unknown? Safe here in West Vancouver we may not appreciate the violence of storms at sea, unless of course we are boaters; or the swirling danger that dances across the prairies and twist our livelihood up into the skies. They can be devastating, terrifying and life threatening. “Jesus, don’t you care?” The church is a mess; my life is a mess – “Jesus, don’t you care?” Storms of life, what do they look life?: a budget shortfall, financial insecurity, quietness in the marketplace, unstable interest rates, job insecurity, a new relationship, job or home, high school or university graduation (which, while bringing great happiness at the time creates the fear of now what?) What about the continuing unrest in the world? What will eventually happen in Iran, Iraq, Lebanon, Syria, Palestine, Israel, Libya, North Korea, China, Cuba? These days, there’s the threat that overshadows any kind of travel: hostage taking, terrorism, covid! There’s the increasing demands and uncertainties of growing children, aging parents, as well as our own anxieties of growing older and maybe losing control of our lives, or of moving into care facilities, or of facing a life-threatening illness and approaching death. Like disciples, we all find ourselves, thrust into the midst of some sea, in a vessel that seems too small for calm sailing, too fragile to resist the rocking, swaying and pressures from above, below or 'round about! Fear is just as much a part of life as is death and taxes. It's most likely a naturally built-in protection mechanism, developed over the eons of evolution. Most everyone is afraid of something. People turn to God, or one another to abate the terror that overtakes them when they're not in control of a situation. We do all manner of things to cover our fear; we deny it, or even pretend that it doesn't exist. We whistle a happy tune, talk to ourselves, immerse ourselves in work and activities, eat or try to appear confident as the uncertainty of an unknown future, approaches! Sometimes we might even call out to God wondering if God has stopped caring, or watching. Every once in a while, I catch Jazz-Gospel singer Louise Rose singing “His Eye is on the Sparrow,” and “I know he watches me” – but does he? Where is our happiness when we fear that God has lost interest in us? Despite all these masquerades, God is not fooled. God made us - knows us and sees our bravado. God understands that we are afraid. Scattered throughout scripture, are incidents of angels or messengers of God approaching people, often the first thing said is: "fear not, don't be afraid!" But the storms of life assail us and we are left scurrying around, looking for safety and a way out! When Mark penned the story of Jesus and the disciples on the sea, the infant Church was already beginning to feel abandoned and alone. Jesus, who had promised to come again, had not arrived! The church, which tried to live by, believe the teachings of Jesus, was being persecuted, threatened and tortured. Many of the faithful had already been martyred for their beliefs. Like the disciples on the stormy lake, the young community desperately tried to understand why Jesus had abandoned them. Why, by his silence, did Jesus act as though he were asleep somewhere, unaware of the storms of life which battered their church-boat which plied the troubled times. Where exactly was God? … like Jesus asleep, inattentive, unconcerned? Mark asks the young church and subsequently us, why are you so terrified, inactive? Why are you still, lacking in faith? "Winds and seas, be calmed!" The story has waves of meaning that go far beyond a miraculous display of divine power. No matter what storms come into our life, Jesus can bring peace and calm. Tossed about by worries or misfortune, fears of the unknown: a beginning or an ending; Jesus says: "Peace! Be still!" Faith, in one who calms the mighty chaos of the sea, will sustain any one through their trials of daily Christian living; even carry them through the rigors of persecution, indecision, fear and the greatest fear, death itself. Mark reminds his readers that Jesus is attentive, even if asleep and can be called when needed for Jesus is risen! Not gone! Therefore, we can trust that God has not forgotten humankind. What is our greatest fear? Is it something unknown? Is it fear its elf? Name them and take them to Jesus, in prayer. Remember our Hymn: What a Friend we have in Jesus? "Have we trials or temptations? Is there trouble anywhere? We should never be discouraged. Take it to the Lord in prayer." But Lord, I'm frightened of beginning something new; I'm frightened of unemployment, of surgery, of changes in my family or marital status. I fear for my children's future, I fear for my life. I fear for the environment, our world, our country, our community, our church and congregation. "Are we weak and heavy-laden, cumbered with a load of care. Christ the Saviour is our refuge. Take it to the Lord in Prayer." Let’s awaken Jesus with our prayer and let him quiet the tempest in our hearts. Jesus confronted his own fear by trusting God even when there was no hope. In the garden of Gethsemane, Jesus accepted a cup of suffering which led to the breaking loose of human limitations. Faith, is hoping against all hope when there is no rationale for trusting God. There's the story of a mountain climber who fell over a steep cliff. Just before dropping out of sight into apparent nothingness, the climber managed to grab onto a small little branch that was sticking out of the rocks. After desperately trying to figure out how to reach safety, the mountaineer called out "Jesus, don’t you care" After a little silence, a large, divine-sounding voice thundered: "let go of the branch!" After a fearsome pause of anxiety, the climber hollered out once more, "is there anyone else, listening?" There's nothing wrong with fear, our survival may well depend upon it - it's what we do with our fear. Are we immobilized, paralyzed, depressed or inspired? Trusting in God, is not a naive acceptance nor disregard for danger but is rather, a focus on the good that is at the heart of reality. It is a belief, a trust; a faith that since God is God...things will eventually work out, for good! There WILL be danger, there WILL be trouble. We may not even see for ourselves what God will create one day, but God does quiet the storms. God's spirit does give power to disciples who fear mightily so that they may endure mightily; going, saying, doing what would have been impossible before. Such faith does not excuse us from taking responsibility for the storms, turmoil or dangers of this world, but empowered, we are called to trust God, to trust in God's people, to believe in the overall goodness of others and to accept Jesus' model for life; to risk, to let go of the branch; to leave security and control behind; to be a pilgrim people, a loving people, a serving people, a forgiven, saved and trusting people. We are redeemed and loved by God who has given us the strength and the courage to weather all of life's threatening storms. The old gospel hymn “Abide with me” says it best: "I fear no foe with thee at hand to bless; ills have no weight, and tears no bitterness. Where is death's sting? Where, grave the victory? I triumph still, if thou abide with me." So, "why are we afraid? Have we still no faith? And Jesus said, "Peace...Be still! At least that’s the way I see it!
By Rev. Dal McCrindle 14 Jun, 2021
June 13, 2021 " SCATTER THEN WATCH" Rev. Dal McCrindle Scatter, then watch 뿌리시고 그리고 무엇이 자라는지 보십시오 June 13 2021 태평양 연안의 가장 자리 열대 우림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우리들 삶에서 늘상 있는 작물을 심고 뿌리는 모습은 낯설지 모릅니다. 광역 벤쿠버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여러 지역 출신이며 들판에서 살다가 온 사람들이 많을 것 입니다. 예수님 시절에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는 농부 이시고 이 땅에 가꾸시고 거두시는 분으로 표현되곤 했습니다. 식물이 다 성장하면 하나님께서 심으신 열매를 추수하시고 거두어 들이는 계절 입니다. 창세기 2:4을 보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농경사회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동산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 다른 곳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말씀 하시기를 밀과 가라지를 온전히 따로 떼어 농사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 하시기를 추수 때가 되면 밀은 거두어 곳간 안데 두고 가라지는 한데 모아 불속에 던진다 하셨지요. 쓸모 없는 것들이 구분되어 버려져 검불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농부로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은 쓸모 있는 작물인지 혹은 그 반대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정원에서 일하는 우리들이 하는 일이 크든 작든 간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대부분의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을 만나고 말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겪기도 합니다. 가끔은 심하다 싶을 만치 고통 당할 때도 있고요. 이런 일을 겪으면서 우리의 삶이 흔들리고 후퇴하고 중단해야 할 순간에 믿음은 우리의 힘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작은 겨자 씨 한 알을 생각하면서 그 작은 한 알이 가져올 말 할 수 없이 큰 희망을 생각하고 또한 겨자씨 만한 믿음이 산을 옮길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 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곳 세상의 정원에는 전쟁이 있고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추측이 돌고 살인과 인질 학대하고 모함하고 기만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세계 어는 곳이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부패가 있고 사건들을 만들어 냅니다. 조용하고 안전했던 곳이 싸움을 일삼는 사람들로 인해 전쟁의 장소로 변합니다. 처음 회심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던 사람들은 모든 악이 끝이 날 것이라 소망 했을 것이며 두번째 그리고 마지막 때 하나님이 오실 때에 새로운 세상으로 사람들을 인도 하리라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대부분 우리들과 같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실망하여 희망을 잃고 믿음을 놓치더라도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시리라 믿으며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시 오리라 말씀 하신, 위대한 힘을 가지고 오시리라 믿습니다. 또 모르지요 오시지 않으실 수도…! 그의 나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에게 잡초와 가라지를 구별 2 Scatter, then watch 뿌리시고 그리고 무엇이 자라는지 보십시오 June 13 2021 하시리라 약속하신 숙련된 정원지기는 어디에 있습니다? 주여 저희들에게 겨자씨 만한 믿음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사도 바울도 더러 그가 전도 여행을 하면서 좌절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들의 믿음 없음에 대하여 조급함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담대할지라,” 그가 말하기를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살며… 옛 것은 지나고 새것이 올 것이다.” 우리는 몇 백 년 후 우리의 교회가 기독교인의 믿음으로 시작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하늘에 계신 우리를 가꾸시는 이를 믿으며, 이 땅의 삶을 살면서,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며 혹은 보지 않을 것을 보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열정과 염원으로 위험에 빠지게 되는 일을 사양하고; 두려움을 물리치고 용기를 가지고 비전을 갖는 것을 생각 하실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희망과 용기가 필요 했었습니다; 우리 역시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여기 이곳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 믿음의 기본적인 교의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예수께서 보셨던 것을 볼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환영과 사람들이 만든 거짓을 뚫어 볼 수 있는 것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비전과 방식대로 보고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가난한 자들, 과부와 고아들, 그리고 멸시와 억압 당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분개할 줄 알고; 악에 대항하여 정의를 찾으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위하여 일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제 학교 시즌이 마쳐갑니다. 여름 방학이 다가오고 또한 코비드 상황이 서서히 통제권 안에 들어오고 있으며 저의 여기 세인 데이빗 교회에서의 사역이 마쳐져 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역자가 곧 오게 되고, 하나의 인생이 마쳐지는거지요. 씨를 뿌리는 시간이 지나고 인생의 추수 때가 되고 종종 인생이 다른 장으로 넘어가면서 우리가 해 왔던 일을 뒤를 돌아다 보고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곳을 바라보며 나아갑니다. 우리 인생의 출납부를 살펴 보지 않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3 Scatter, then watch 뿌리시고 그리고 무엇이 자라는지 보십시오 June 13 2021 어떤 일이 좋았는지 혹은 어떤 일이 그렇지 않았는지; 우리가 잘 한 일에 으쓱해보고; 우리의 실패를 되짚으며 우리가 남들보다 앞서 했던 일들을 살펴보거나 그 기간 이루어 내었던 일들을 돌아보고 우리 인생의 목표와 꿈을 위하여 보냈던 다른 시간들을 생각해보기도 하지요. 돌이켜 보거나 혹은 비교를 해보는 것도 가치 있는 일 일듯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중요한 목표는 우리를 가꾸시는 하나님처럼 심고 혹은 물을 주기도 하고 거름을 주고 누군가가 오래 전 돌보았으나 손질이 뜸 했던 것들을 가꾸는 것입니다. 오래 전 저는 비씨 주 의장 이었을 때 연합 교단 대표 자격으로 제 3국의 삶의 현장을 들여다 보기 위하여 멕시코의 한 지역과 난민 지역을 방문 했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사는 절망적인 삶의 현장과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으로 재 건설 해야 하는 상황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아 이를 극복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처음 겪는 사람처럼 즉각적인 해결책을 생각하려 했습니다: 뭘 어찌해야 상황을 신속히 바꿀 수 있을까? 이런 측은한 상황을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우리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들으면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인내심을 배웠으며: 믿음으로 사랑하고, 돌보며, 봉사하면서 이 모든 것들이 계획 속에서 이루어져 가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말은 (거기에 사는 ) 그들이 게으르다는 말이거나 그들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거나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들이 믿음대로 사는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추수 하실 것임을 믿는 것을 말 하는 것 입니다. 빙빙 도는 커다란 판을 돌려 작은 촛침이 가리키는 곳에 따라서 사는 인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에 따라서 추수 할 때가 이르면 거두십니다. 우리가 많이 거둘 것을 고대하고 작물을 심고 누군가가 물을 주고 가꾸며 가지를 치리라 기대하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수고에 따라서 열매를 거둘 것이라 생각 하는 것은 잘못 된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소망 (믿음)을 두면 때가 이르면 거두어 질 것 입니다. 아무리 아주 오래 기다린 사람 일지라도 그의 추수 때는 반드시 찾아 옵니다. 아무리 세상이 지옥 문을 열고 파괴 한다 하더라도 추수 때는 찾아 옵니다. 아무리 여러분과 저의 소출이 적을 지라도 추수의 시간은 찾아 옵니다. 우리는 하나씩 심으면서 한걸음씩 4 Scatter, then watch 뿌리시고 그리고 무엇이 자라는지 보십시오 June 13 2021 이 세상을 살아나가며 이 세상을 가꾸고 관리 하시는 우리에게 속한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 시절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상징을 큰 나무가 제공하는 나무 아래 쉼터로 이해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전 하게 쉴 수 있는 곳. 중동에서는 겨자 덤불이96-108 센티 미터쯤 자랍니다만 여전히 새들이 깃들 수 있는 충분한 수풀입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씨앗에서 그렇게 성장 하는 것입니다. 겨자가 자라기 시작하면 통제 할 수 없을 만치 쑥 자라서 근처 넓은 지역을 덮습니다. 여러분의 일이나 저의 일이 믿음으로 하는 일이며 우리가 사는 지역이 크거나 작거나 간에 우리는 천국의 만들어 나가는 것 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짓은 이도 생명을 주는 이도 이세상을 위한 계획을 하는 이도 아니지만은요. 우리의 이런 믿음의 일들이 땅을 파고 거름을 주고 가꾸면 반드시 추수 때가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절망하고자 하거나 인내심이 바닥이 날 때 희망은 사라집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되새겨야 합니다. “추수 때가 오리니.” 우리가 어디에서 살든 어떤 일이 있든 믿음으로 산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으로 살게 됩니다. 부활절 이후는 오순절과 예수님의 승천이 나타내는 색깔은 초록입니다. 만물이 자라고 희망을 나타내며 새 생명을 나타내는 색이지요. 예수님 안에 사는 우리는 희망으로 용기를 가지고 핍박을 받을 때 인내하고 안으로 자라면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희망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더디 오는 것 같지만은 천천히 자라가고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작은 씨앗에서 출발하여 작은 말로 시작하며 작은 몸짓으로 시작하여 지금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환영하고 삶이나 죽음을 이야기 하고; 우리 교회가 이 지역 사회에 함께 하면서; 사람들의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천국으로 돌아갈 때 여기에서 슬픔을 함께 나누고; 사람들의 모든 일들을 우리가 함께 나누며 사는 것, 이 모든 것을 의미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가꾸는 일인 것 입니다. 우리는 시앗을 뿌리지만 씨앗이 자라는 것을 못 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 씨앗이 잘못 자라는 것을 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주어진 일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할 수 있는 한 심고 가꾸는 것 입니다. 5 Scatter, then watch 뿌리시고 그리고 무엇이 자라는지 보십시오 June 13 2021 만역 우리가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본다 하더라도 딱딱하고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땅이 부드럽게 변하면서 꽃을 피우는 것을 본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이 땅 바로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 임을 믿으십시오. 이것이 저의 신앙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By Rev. Dal McCrindle 11 Jun, 2021
June 13, 2021 " SCATTER THEN WATCH" Rev. Dal McCrindle 散播种子,然后等着瞧 2021年6月13日 Scatter, then watch June 13 2021 对于我们这些生活在太平洋海岸热带雨林边缘的人来说,种植和散布的象征和意象在 我们的日常经验中可能不是很熟悉,然而,许多生活在大温哥华地区的人来自其他地方; 许多都起源于广阔的大草原。 对于耶稣时代的农民来说,上帝经常被描述为天上的农夫,他种植并照料大地的花园。 在生长的时候,上帝会收获庄稼,收集季节的果实。在《创世纪》第2章第4节中发现的第 二个创造故事受到了农业社会的很大影响,在那里上帝的创造力被描述为在创造一个完美 的花园的过程中!在另一个地方,耶稣谈到小麦和野草,以及如何把它们分开。耶稣说,到 收割的时候,稗子必被捡起来,丢在火里; 谷壳,也就是谷粒外部无用的部分,将被分离 并丢弃。当我们想到上帝是天上的农夫,或者当我们想到多产或不多产的庄稼时,所有这 些形象都会浮现在我们的脑海中。 反思这些主题,让无数人认识到,他们在神的园地里的工作是重要的,无论它是多么 渺小,或看起来多么微不足道。 大多数人在人生的某个时刻都被生活中的灾难、每个人都面临的危机和问题所动摇过。 有时,我们可能被明显地打败了。事实证明,我们的信仰并不是我们曾经认为的力量之塔: 我们动摇了,退缩,撤退。也许,我们的思想被芥菜种子的影像所吸引,我们凝聚了一点 希望,然后又做了一点梦,甚至想到了移动山脉。 在我们周围,在我们的世界——花园中,到处都是战争,有战争的谣言; 杀戮、劫持 人质、虐待、阴谋诡计和欺骗; 有组织犯罪,而腐败在上层和下层都很猖獗。我们社区的 安静和相对安全已变成交战团伙之间的战斗区。有些人,比如那些最初的门徒和早期的皈 依者,甚至可能希望万物的终结,也就是上帝将带来一个新的世界秩序的第二次和最后一 次降临。许多人像我们一样,坐着等候神的作为,也有人因这耶稣说他必带着大能和力量再 来.....可没有来! 就失去了信心和感到沮丧。他的王国在哪里? 承诺扫去稗子和稗子的园 丁大师在哪里? 上帝啊,请赐给我们芥菜种子般的信心! 使徒保罗,尽管在他的旅程中有时步履蹒跚,但也告诉了我们他的怀疑和不耐烦。他 说: “我们总是很有勇气…… 因为我们行事凭信心,不是凭眼见…… 旧的已经过去,新的 已经到来。” 你可能会想,几百年后,我们这些教会的人可能开始过着这种基督教信仰的生活; 要 有这芥菜种子般的希望和信心; 相信我们天国的园丁,在人间的土地上行走,眼睛能看到 别人不能或拒绝看到的东西; 在别人失去冒险的欲望或激情时冒险; 当遭遇恐惧和失败时, 要有勇气和远见。但不是,正如保罗和他的同事需要被鼓舞和鼓励; 在这个时候,在这个 地方,我们也需要再次听到我们信仰的基本信条。 我们被鼓励去看耶稣所看见的。我们需要洞察人类系统的幻觉和错误主张,然后根据 上帝的视觉和系统来观察、说话和行动; 与穷人、寡妇、孤儿、受虐待和受压迫的人站在 一起;寻求正义,抵抗邪恶; 并将最终的结果交托给上帝。 随着学年结束,暑假临近,疫情可能得到控制,我作为你们部长的任期也接近尾声, 新的任期即将到来; 生命的另一个周期就完成了。随着每一粒种子的播撒和收获,生命的 节奏也随之而动,通常在进入另一个周期之前,回顾我们所来的地方,然后展望我们可能 要去的地方,是一件好事。我们很难不去评估我们一起生活的负债和信用; 好的和不好的; 突出我们的生产力; 承认我们的失败; 把我们的缺点或成就与其他时期的比较; 把我们的目 标和梦想和其他时代的相比。反思和比较可能是值得的,但我们的主要任务是要像园丁一 样:去种植,也许是浇水、施肥和培育别人不久前种下的东西。 许多年前,当我还是卑斯会议的主席时,我访问了墨西哥的各部族的贫民区和难民营 ,作为联合教会揭露和观察第三世界生活的一部分。我被恶劣的环境和对社会、政治和经 济改革的迫切需要所征服。和其他救援新手一样,我也在寻找立竿见影的解决方案: 什么 会立即影响变化? 什么能解决他们可怜的生存? 然后我们倾听人们的声音,听说他们在几个 世纪里学会了忍耐; 在爱、关怀、事奉上忠心,因为花园的整体规划不是他们的事,乃是 神的事。这并不是他们懒惰的表现,也不是为了免除任何人的个人罪责或责任,而是反映了 他们相信上帝一定会确保丰收的到来。他们相信,他们的忠诚生活使巨大的改变之轮一次 只转动一个微小的齿轮,而不是把改变之轮转一圈。在上帝的时间里,收获将会到来。 对于我们这些成就卓越的人来说,要先播种,然后又相信别人会灌溉、耕种、修剪, 而别人会收获我们的劳动成果,这是很难的。但对耶稣的信心是,收获终会到来。即使是 那些等待了很久的人,收获也会到来。即使世界似乎执意要毁灭,收获也会到来。即使我 或你所做的微不足道,也会有收获的。我们必须一天一天地生活和种植; 一步一步来,知 道这个花园的全部照料属于别人。 对耶稣时代的人来说,神的国度或神的统治的象征是一棵为所有人提供庇护、保护和 安全的大树。在中东,芥菜树可以长到大约8-10英尺高,但仍然足够大,鸟类可以在里面 筑巢。它从一颗相对较小的种子开始。一旦播下种子,它们几乎无法控制地生长,占据了 大片农田。我的工作,你的工作,那些住在大大小小的地方的人的忠信的工作,就是建立 王国的工作; 但我们不是建造者,也不是赋予生命的人; 我们也不是制定计划的人。我们是 那些忠实地播种、挖掘、施肥和滋养的人,收获终将到来。 当我们绝望的时候,当我们所有的耐心消失,希望消失的时候,我们要记住耶稣的话 ,“因为收割的日子必到。” 无论我们身在何处,无论收获发生什么,我们都要生活在其 中——信心,上帝高于一切的旨意的象征。在复活节、圣灵降临节和耶稣升天节之后的几 个月里,做礼拜的季节是绿色的; 成长的颜色,希望的颜色,新生命的颜色。因为在耶稣 基督里,我们获得了带着希望生活的力量,带着勇气工作的力量,在被推倒时忍耐和成长 的力量。 神的统治似乎来得很慢,发展也很慢,但神的国就在这里,从最微小的行为、最微小 的言语、最微小的动作。当我们欢迎任何想谈论生或死的人; 当我们把教会建筑提供给社 区时;当我们对在这里结婚的人持开放态度,或者欢迎家人来这里哀悼他们的死者;当我们 为他人和自己提供服务时,在所有这些和许多其他事情中,我们播下了种子;我们可以浇水 ,别人也会浇水的种子。我们可能看到增长,也可能看不到。我们可能会对生长的东西感 到非常惊讶! 我们的目标是无论何时何地,只要我们能够,就去种植和园艺。 如果我们能用科学、理性的头脑相信坚硬休眠的种子可以变成柔软芬芳的花朵,那么我 们甚至可以相信上帝的统治会在地球上,在这个地方生长。至少我是这么看的! 感谢上帝!
By Rev. Dal McCrindle 11 Jun, 2021
June 13, 2021 " SCATTER THEN WATCH" Rev. Dal McCrindle For those of us living on the edge of the rain forests of the Pacific Coast, the symbols and images of planting and scattering may not be very familiar in our everyday experience and yet, many people who live in the greater Vancouver area have come from elsewhere; many having their origins on the expansive prairies. For the farmers of Jesus; day, God was often described as the heavenly FARMER who planted and cared for the garden of earth. At the end of the growing time, God would harvest the crop and gather in the fruits of the season. The second creation story found at Genesis 2:4 was very much influenced by an agricultural society where God' s creativity is described in the process of creating a perfect garden! In another place, Jesus spoke about the wheat and the weeds and the difficult task of separating them. At that harvest, says Jesus, the weeds will be gathered up and thrown into a fire; the chaff, that useless outer part of the grain will be separated off and discarded. All of these images could come to mind when we think of God as a heavenly farmer or when we think of productive or unproductive crops. Reflecting on these themes has uplifted and helped countless people see that their work in God's garden-place is important, no matter how small, or how seemingly insignificant. Most people have been shaken by life's disasters at some point in their lives, the crises and issues which face everyone. On occasion, we may have been noticeably beaten down. It turns out that our faith had not been the tower of strength we once thought it might be: we faltered, retreated, withdrew. Possibly, our thoughts were drawn to the image of the mustard seed and we mustered a little hope and then dreamed a little, of even moving mountains. Around us, throughout our world-garden, there is war, rumor of war; killing, hostage-taking, abuse, intrigue and deception; there is organized crime while corruption abounds in both high and low places. The quietness and relative safety of our neighbourhoods have been transformed into battle- zones between warring gangs. Some, like those first disciples and early converts might even have hoped for the end of everything, the second and last coming when God would usher in a new world-order. Many, like us, sat and waited for God to act, while others lost their faith and were dismayed, for this Jesus, who said he would come again, with power and with might...did not come! Where was his kingdom? Where was the Master-Gardener who promised to sweep away the tares and the weeds? O God, give us that mustard-seed faith! The Apostle Paul, even though he sometimes faltered throughout his journey, spoke to our disbelief and impatience. We are always of good courage,” he says, “...for we walk by faith, not by sight...the old has passed away, and the new has come." You would think that after several hundred years, we of the church might begin to live this Christian faith; to have this mustard-seed hope and faith; to trust in our heavenly gardener, and to walk in the land of the living, with eyes which see what others cannot or refuse to see; to risk when others have lost any desire or passion for risking; to have courage and vision when assaulted by fear and defeat. But no, so just as Paul and his colleagues needed to be uplifted and encouraged; we too, in this time, in this place, need to hear again the basic tenets of our faith. We are encouraged to see what Jesus saw. We need to penetrate the illusions and false claims of human systems and then see, speak and act according to God's vision and system; to stand with those who are poor, widowed, orphaned, abused or oppressed; to seek justice, resisting evil; and to trust the ultimate outcome to God. As the school year comes to a close, the summer holidays approach, the pandemic, maybe under control and my time as your minister nears its end, new one just around the corner; another cycle of life is complete. With each passing seed-time and harvest the cadence of life moves and often before moving into another cycle it is good to look backward from whence we have come and THEN to look forward to anticipate where we might be going. It is hard not to try to assess the debits and credits of our life together; that which has been good and that which has not been so; to highlight our productivity; confess our failures; compare our shortcomings or accomplishments against those of other periods; compare our goals and dreams to those of other times. Reflection and comparison may be worthwhile, but our Maybe to water, fertilize and nurture that which someone else planted a while ago. Many years ago, when I was President of BC Conference, I visited the barrios and refugee camps of Mexico as part of a United Church exposure and observation of Third World living. I was overcome by the terrible conditions and the desperate need for social, political and economic reform. Like other novice rescuers, I looked for immediate solutions: what could affect change right away? What would solve their pitiful existence? Then we listened to the people and heard that they had learned over the centuries to have patience; to be faithful in loving, in caring, in serving, for the over-all planning of the garden was not theirs to do but was God's. This was not indicative of their laziness nor was it to absolve any from personal culpability or responsibility, but a reflection of their faith that God would make sure that the harvest comes. Instead of trying to turn the wheel of change all the way around, they believed that their faithful living resulted in moving that great wheel of change one miniscule cog at a time. In God’s time, the harvest would come. It is hard for we super achievers to plant and then to have faith that someone else might water, cultivate and prune while still others will reap the harvest of our labour, but the faith of Jesus is that the harvest will come. Even for those, who have waited so long, the harvest will come. Even as the world seems hell-bent for destruction, the harvest will come. Even if what I or you do is small, the harvest will come. We have to live and plant one-day-at-a-time; one-step-at-a-time, knowing that the over-all care of this garden belongs to another. For the people of Jesus time, a symbol for God's kingdom or God's reign was of a very large tree which provided shelter, protection and security for all peoples. In the middle East, the mustard bush grows to about 8-10 feet in height, but is still large enough for birds to build their nests in it. And it begins from a relatively small seed. And once seeded, grows almost uncontrollably, taking over vast areas of farmland. My work, your work, the faithful work of those who live in large or small places is the work of kingdom-building; but we are not the builders, nor are we the ones who give life; nor are we the ones who draw the plans. We are those who faithfully plant, dig, fertilize and nurture for the harvest will come. When tempted to despair or when all patience has vanished and hope is gone, we are called to remember the words of Jesus, “For the harvest will come.” We are to live wherever we are, no matter what happens with harvest-faith, the symbol of God's overriding providence. During the months which follow Easter, Pentecost and Ascension, the colour for the church season is green; the colour of growth, of hope, of new life. For in Jesus Christ, we have gained power to live with hope, to work with courage, and to endure and grow when pushed down. God's reign may seem slow in coming, slow in growing, but God's kingdom is here, right now: from the smallest deed, from the smallest word, from the smallest gesture. When we welcome any who wish to speak of life or death; when we make available our church building to the community; when we are open to people marrying here, or welcome families to grieve their dead here; when we provide service to others as well as ourselves, in all of these and many other things, we plant seeds; seeds which we may water and others will water. We may see growth or maybe not. We might be terribly surprised as to what grows! Ours is to plant and to garden whenever and wherever we can. If we, with our scientific, rational minds can believe that a hard and dormant seed can become a soft and fragrant flower, then we can even believe that God's reign will grow here upon the earth, in this very place. At least that’s the way I see it! Thanks be to God!
By Rev. Dal McCrindle 07 Jun, 2021
June 6, 2021 "DOWN WITH THE KING!" Rev. Dal McCrindle 만약 여러분의 인생에 어려움을 경험하고 싶으시다면 왕실 (집권하고 있는 사람/정당)에 대하여 비난을 하시면 됩니다. 저는 유명한 미국의 한 목사가 주일 날 설교를 시작 하면서 예수님을 왕으로 말하면서 이런 말로 시작 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왕을 원하십니까? 아니지요! 여러분은 군주제가 아닌 민주주의를 믿고 계시잖아요. 그런데 왕이 필요 하시다구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무질서 하고 흔들거려서 누군가 책임을 질 사람이 필요 하시다구요? 왕이요?” 그리고 그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저는 지금 (군주가 다스리는 시절에) 바람둥이가 폴로 게임을 끄적거리는 것 혹은 만족스럽게 사는 중년의 한 여인이 값비싼 신발을 신고 조그만 손가방을 들고 다니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진짜 군주제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왕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나서다가 어는 남자 분이 멋진 신발을 신고 손가방을 끼고 있는 영국에서 온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이런 일이 있으셨어요,” 하고 말을 좀 더듬거리고 아마도 여러분의 교회에서 영국에서 온 방문객을 만났을 수 도 있겠지요” 당신은 재미도 없고 수치스럽네요. 당신의 상관에게 말해야겠어요. 그는 열심히 정성을 다하여 말하면서 그가 하려고 하는 말의 요점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시라고. 제 바램은 오늘 설교 제목이 제가 군주제를 반대하는 사람으로 비춰져서 여러분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기를 바랍니다만 제 의도는 사무엘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이 왕을 원했던 것과 이즈 마법사에 복음에 대해 여러분께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적인 사람들이 의견은 행동으로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왕을 원했고 다른 민족들처럼 왕이 나라를 다스리기를 원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이리저리 떠돌며 더이상 아무것도 아닌 오합지졸의 민족이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강한 민족이 되고자 했습니다; 다른 이웃 나라들처럼 이요 –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은 왕을 원했습니다. 예언자 사무엘은 직설적으로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왕이시라고. 그들이 생각 하는 모든 것들은 재판장을 소란스럽게 할 것들 이라고. 사무엘은 군주 아래 있다는 것은 비싼 댓가를 치러야 할 것 임 예견하였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자율권을 가지기 보다는 복종하는 삶을 살 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세금을 내고 여성들이 부당한 대접을 받고 왕이 그의 친구에게 나누어 주는 땅은 그들을 속박하고 그들을 노예화 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왕을 하락해 주시기를 요청 하였습니다. 우리는 왕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나라들 처럼 살게 될 것이다. 사무엘은 이런 말씀으로 그들이 주의 하도록 하였지만 (전혀 귀 기울이지 않고) 백성들은 왕의 대관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매 몇 년 마다, 민주주의 국가에게 투표를 통하여 새로운 지도자가 선출되는 것을 봅니다; 이번에는 뭔가가 달라질꺼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번에는 지난 번 과는 다를 것이며 선거기간 동안 공약으로 내 걸었던 약속들이 지켜 질 것 임을 믿으면서 말입니다. 이번에는 새로운 지도력이 나라를 변화시킬 것이라 믿습니다 – 이번에는 우리의 모든 문제가 싹 해결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 이번에는. 저는 몇 년 전 만화로 그려졌던 이드의 마법사를 기억합니다. 거기 나오는 한 캐릭터 스푸크는 어슬렁 거리면서 독자들에게 왕이란 놈은 참 기분 나쁜 놈이라고 말해줍니다! 이런 말은 역량 있는 차기 지도자에게 전혀 도움이 되는 말이 아닙니다…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선거를 막론하고 우리를 투표한 결과로 오게 되리라 생각하는 것은, 우리들의 오해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어느 나라에 속하든 지 간에 자구 상에 존재하는 어느 나라이든 그 지도력 아래 살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돌아가게 하는 힘 이지만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그런 힘을 가진 왕권 아래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란 것 입니다. 사무엘은 사람들에게 왕을 모신다는 것이 노예 살이를 끝내게 할 수는 있다고 경고 했습니다.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부가 있어야만 합니다. 쓰레기를 치우고 도로를 손 보고 새로 만들고 우리가 사는 사회 안에서 안전을 보장 받아야 합니다. 정부가 군주제에서 좋은 것들을 선택하겠지만은요. 그러나 실제 현실은 사람들이 더욱 어려워지고 상황은 더 악화 된다는 것 입니다. 병이 깊어지고, 죽음을 맞이하고, 나이가 들고 사람들이 겪는 불안한 것들에 대해 정부가 무엇을 해줄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정부에게 원하고 있습니다. 왕은 나쁜 놈이지요. 어쨌건 그 제도 안에서 우리의 신뢰를 저버리니까요. 만약 나라를 다스리면서 우리를 변화시키고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면요. 우리 사람들은 연약한 존재로 우리 인간의 문제들을 적합하지 않은 방법으로 풀어 보려고 애를 씁니다. 예언자 사무엘과 예언자 스푸크 (위자드 이드에 나오는)는 이세상의 왕과 왕비에게 성급하게 우리의 바램을 맡기지 않기를 경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오로지 그 분 한 분만이 왕이시고 우리는 그의 나라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간, 6월 10일은 정확히 연합 교회가 96년이 되는 날 입니다. 어떤 면에서 캐네이디언 기독교는 다른 교단과는 달리 세상을 더 나은 곳이 되게 노력 하는 교단 입니다. 우리의 이런 믿음으로 기독교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위하여 노력 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신다면 우리 신앙,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한발 더 가까이 가게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들 공동체가 좋지않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교회 안에서 애쓰고 노력하면서 그 해답을 찾으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웨스트 벤쿠버에서 자리하고 성장 하였습니다. 연합 교단이 생기기 전, 1919년에 3개의 주요 교단, 장로교, 감리교 그리고 침례교가 합하여 교회를 이루어 왔습니다. 1925년에 연합 교단에 큰 혼란이 있었지만은요. 시간이 감에 따라 많은 다른 교회가 연합 교단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정부나 군주제는 오로지 한가지 방법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결 하려고 하지만 교회는 서로가 연합 하는 것에 결코 적대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행위가 우리를 배신 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우리를 절대 저버리지 않으시는 우리를 지으신 분 앞으로 인도 하는 일이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교단 안에서 어느 기념일이라도 기념하게 나누며 성도와 교회가 새로운 찬양을 즐거워하고 새로운 사역자를 반기며 교회를 이어가는 것을 기뻐 하는 것 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왕이 계시고 우리는 그분의 나라 안에 거하며 이것이 이 세상을 다르게 만들고 확실히 달라진 것이 영원히 지속되게 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저의 신앙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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