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11, 2021 "I Believe - Sort Of" Rev. Dal McCrindle온갖 일이 그곳에서 다 일어 났습니다. 마리아는 그녀가 예수님을 봤다고 믿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목숨을 잃지 않으려고 몸을 숨기면서 제발 들키지 않기를 바랬지요. 그러나 마리아는 무덤을 찾았고 무덤이 비어 있음을 베드로와 요한에게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시신을 싸고 있던 천들이 남겨져 있고 천들은 접혀져 있는 것을 발견 했습니다. 마치 시신이 증발이라도 한 듯이 사라져 버렸지요. 우리는 즉시 예수께서 부활 하셨음을 믿었습니다. 요한 복음을 보면 오늘 우리가 읽은 구절이지만 예수께서 다시 살아 나신 이야기가 다른 제자들 잘 전해지지 않은 듯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의 집으로 돌아오고 마리아는 그 곳에 남아 울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곳에서 그녀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녀가 만나 분이 그 곳을 지키는 사람이라 오해 했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전하고자 했습니다.제자들이 다락방, 마지막 만찬이 거행 되었던, 에서 예수님을 비밀스럽게 만나는 것은 가능한 일 이었을 것입니다. 엄숙한 일이 행해졌던 그 장소 에서요. 마지막 만찬은 너무도 훌륭했지만 제자들은 겁이 났을 것 입니다. “집 문을 노크하는 누군가가 전혀 기대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 했던 일을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군중들이 베드로가 부인 하는 것을 믿지 않았다면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무덤으로 부터 돌아오면서 혹시라도 그들이 마리아를 따라 무덤으로 향했다면 말이지요?그들이 두려움에 떠는 중에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하시던 대로 그들에게 인사를 하셨습니다. 샬롬 알레이헴 (평화가 당신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 “평화가 당신과 함께 있기를!” 평화를 비는 말에 답을 해야 했겠지요. 샬렘 알레이헴! 제자들이 평화를 비는 말에 답을 했는지는 복음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연약하고 의심 많은 제자들이 단지 빈 무덤을 바라만 보는 것, 예수님을 부인 한 후 그들의 일상으로 돌아간 것은 어쩌면 이것은 일반적인 우리 사회가 생각하는 것을 따라 하는 행위가 아니었다는 것이지요.그런데 지금 그들은 교회가 베푸는 강력한 은혜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꼐,” 부활하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가 나를 보낸 것 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께서는 말씀 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다른 사람을 죄를 용서하지 않는 다면 그들은 용서함을 받지 못할 것이다.” [마태 복음은 마가나 누가 그리고 요한 복음은 부활의 이야기를 다루고, 예수께서 오셔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심으로 그들의 일상의 하루가 다르게 기억되게 하셨습니다!]예수님의 세상에 계시는 동안 하셨던 사역은 이제 온갖 죄를 지은 죄인들, 창녀, 어부, 그리고 세금을 거두는 사람들에게 남겨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서 하신 일들은 오합지졸 겁에 질린 남자 여자들에게 맡겨 졌습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은 그들이 어떤 유혹이 오든지 그들을 격려하겠지만 흔들리겠지요. 다시말하자면, 믿음 없음은 그들의 갈 길을 막기도 하고 그들이 하는 노력을 쓸모없이 만들고 그들이 성실함을 크게 방해 할 것입니다. 거기다가, 그들을 공격하던 사람들을 용서하면 그들은 그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습니다. “너희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나를 믿는 것이냐?” 예수께는 말씀 하십니다. 나를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예수님께서 선교 하셨던 것 처럼, 지금2021년 우리가 그를 따르는 것은, 우리는 그가 말씀 하신 것 그의 말씀을 따르는 상속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 세상에서의 사역은 끝이 났습니다; 그 분은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시고 우리는 그분의 죽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살아 나신 것을 압니다! 그 분은 살아 나셔서, 그들 가운데 계셨으며,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이전에 그들의 삶을 걸고 달려왔던 사람들이 이제는 역사 앞에서 그 진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세상이라는 심판대에서 말이지요. 말도 안되는 상황과 마주하고 거절 당하고 죽는 것이 확실 했습니다. 이제는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을 확실히 가지고 있구요. 두려움은 믿음 앞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사랑에 대한 하나님의 메세지는 그들에게 제한적이든 것이 이제는 우리에게 전해지고 말하여졌으며 또 하나님의 사랑이 말하여 질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서 계셨으며 이는 이전에 그들 앞에 계시던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 사실은 중요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능력을 더 해주시고 그들을 용서/화해 라는 말과 함께 그들을 파송하십니다. 기억 하십시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 오르셔서 하신 첫 말씀을 “아버지 용서 하옵소서!” 였습니다. 만약 이 말씀이 용서와 사랑 그리고 영생에 대한 것이라면 지구 구석까지 이 말씀이 전해질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는 사람들을 통해서 전해질 것 이며 예수님의 몸, 손과 발 그리고 그의 목소리인 교회를 통해 전달 될 것 입니다.예수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전해지고 또한 교회를 통해 예수님이 전해 질 것 입니다. 이는 마치 의심하는 제자들처럼 나약하고 겁 많으며 안전 하고자 하고 확실하고 흔들리지 않고자 하며 불확실한 것에 대해서, 지금 우리에게 예수께서 부활 하신 사건이 그러한 것 처럼, 우리는 우리를 확실하게 해 줄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를 의심 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것을 생각 하기 이전에 교회는 예수님이 필요 합니다.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메세지를 전할 수 있단 말인가요? 선한 행동 일까요? 이웃에게 다정하게 굴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도덕성을 유지 시키는 것? 이러한 것 들은 이 세상을 좋게 만드는 행동들 입니다. 이런 것들은 예수께서 다르다는 것을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 하시기 위하여 보내신 분이시고 그분은 죽으셨다가 살아 나셨습니다!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온전한 사람 책임감 있고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란 무슨 의미 일까요? 하나님께서 창조 하신 그대로 산단 게 무슨 말일까요?: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애의 표본이다! 비록 우리는 위험과 죽음을 마주하고 살고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버려두지 않으신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반자로 살고 있습니다. 어찌 어찌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믿었습니다. 비록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 온 것은 아니지만요!그러나 그 이상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제자들 역시 예수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지금은 교회의 한 지체들인 우리 역시 보냄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복음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증인으로 용서와 구원 그리고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증인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 한 것 처럼, 교회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 하며 세상을 섬기도록 부름 받았습니다,우리가 알다시피, 교회는 하나님을 보고자 하였습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싶어 했으며 하나님의 부름에 늘 믿음으로 나아 온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 하는 것임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우리가 위험한 일을 만나고 우리를 희생 해야 하는 순간에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 한다는 것을 증명 하기 위하여 우리의 삶을 포기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비록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우리의 믿음을 도전 시키곤 하지만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힘을 주시고 교회들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시지 않으셨으며 그들의 희망의; 원천이 되셨습니다.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 주셨으며 말씀 하시길 “성령을 받으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전지 전능한 능력을 주셨습니다. 초대 교회는 성령에 대해서 알고 있었으며 이는 아담이 세상에 창조 될 때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어 생명을 주신 것과 같은 것 입니다.또한 선지자 에스겔이 이스라엘이 민족이 쫓겨나고 다시 돌아왔을 때 마른 뼈로 가득찬 골짜기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새로운 생명과 육신을 소생 시켜 다시 태어나게 한 일과 같습니다. 우리 교회들은 믿음을 위하여 예수님과 함께 동행 하는 제자가 되기 위하여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다락방에서 벌벌 떨며 미리 판단하고 겁을 내는 보통 사람이기보다는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고, 설교하고 회개 하게 하고 용서하며 다시 태어남으로 예수그리스도가 일하시게 함으로써 예수님의 일을 다하게 하는 것 입니다.능력을 받고 보내어 지는 것, 교회는 행동으로 옮길 준비를 하는 것 이지요. 그러나 그리스도의 세상에 충직 하란 말은 무엇 인가요? 우리는 오직 우리와 함께 예배 하는 사람들에게만 충성을 다하는 것은 아닌가요? 아니면 신학적으로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랑만 이 세상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지역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우리가 교회의 지체로 믿는 믿음은 무엇이며, 하나님의 동역자로써 우리를 강요하여 지역의 소외 되어 사는 사람들 억압받고 제도권과 이 사회 밖에서 있는 사람들 그리고 병으로 인하여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까? 때로 우리들은 남의 나라의 정치적인 문제에 너무 쉽게 지나친 관심을 가지거나 국제적인 문제들은 내 문제가 아니라고 취급 합니다. 우리 교회가 가르치는 동역과 제도 안에서 또 조직 안에서 사용하고 혹은 착취하고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께서 다락방에서 우리에게 외치시는 소리는 세상을 향하라는 것 입니다. 다락방 일로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을 말하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의 동역자로써, 우리는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라고 도전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두려움 없이 전 세계 가족들에게 널리 전하기 위해서요. 하나님께서는 창조물에 대해서 열정과 동정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의 식구들 형제와 자매들이요.“평화가 너희와 함께 있기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생명을 불어 넣으니 성령을 받으라, 하셨습니다.이것이 저의 신앙 고백 입니다,
St. David's United Church, West Vancou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