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3, 2021 - UNDERSTANDABLE SPEECH - Rev. Dal McCrindleTha biadh aig cuid ’s gun aca càilAcras air cuid ‘s gun aca biadhAch againne tha biadh is slànt’;Moladh mar sin a bhith don Triath(영어 번역)Some have food, some arehungry and some have no food;but we have food and health’,praise be to the Lord.The Poet's GraceTh =hDh = g (in throat)D = ghe누군가는 먹을 음식을 가지고 있지만, 누군가는굶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먹을 음식이 없지만;우리에게는 음식도 건강도 있습니다’,하나님께 경배를 드립니다.저는 오순 강림절에 방언을 하는 경험을 한 적은 없습니다만 스코틀랜드 게일어로 점심 식사 축복 기도를 한 적은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오순절 주일에 여러 언어로 예배를 드리면서 예수님의 좋은 소식을 나누고 기념 하며 오래 전 예수님의 제자들과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하는 교회에게 성령을 부으신 것을 기념 하는 주일로 섬깁니다. 여러분에게도 성령 하나님께서 이 시간 부터 영원히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어떤 이들은 교회가 마치 장애물 경기와도 같다고 말합니다. 무언가 중요한 말씀이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우리는 오로지 우리는 끝 쪽만 쳐다보고 있다고요.교회에 대해 솔직히 말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교회를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 해야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어려움 이란 교회 지요 즉, 우리 하나님이지요. 그분에 관해서 말하는 건 참 어렵습니다.하나님에 관하여 말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특히 복음주위자들과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은요. 그리고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더욱 그렇습니다. 겁을 좀 내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원칙주의 적이어서 우리 이웃의 신앙에 대해 말한 다는 것은 꺼려지는 일 이지요. 또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말하려고 할 때마다 할 말을 잘 못찾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 있는 제자들이 경험에 대해 기록한 딱 알맞는 말씀을 찾지 못하고 제자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둘러싸고 그들이 모인 집에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충만한 성령 체험에 대해서 말로 표현하기가 힘든 이유 입니다.더 나아가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막는 어떤 힘이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언급 하였다시피, 복음 주의적인 원칙주의자들은 이런 신앙관으로 인해 그들을 오해하고 싶지는 않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우리 이웃은 우리들의 세상 친구이기도 하고 여러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경험한 것들을 기독교인의 시각으로 오해하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들의 종교를 개인적으로 경험한 것으로 이해하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교를 보여주기 식으로 장신구처럼 달고 다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만 “가서 이 세상을 가르쳐 제자로 삼으라”는 요구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화 하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라는 것이라는 것 입니다.사도행전과 누가를 기록한 사람에 관점에 따르면 유대인들의 오순절 축제는 십계명을 받은 것을 기념 하는 축제이며 토라의 기록에 의하면 유대인으로 부터 모든 민족이 예루살렘에 모이는 때 입니다. 여러분 그 축제가 어떤지 상상이 가십니까? 사람은 각지 다른 언어와 관습 복장 그리고 냄새로 인해 곤란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신앙을 가진 유대인라 생각했을 때, 사람들 모두가 히브리어를 사용 했을 것 이라 생각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왔을 터이고 그 곳 지방에 관습에 맞게 변화가 되었을 것 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나뉘어져 있었을 것 입니다; 마치 바벨탑을 만들자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다른 언어를 주셔서 혼란스럽게 하시고 민족을 나누신 일, 창조주에게 대들었던 사람들의 한심한 노력이 부질 없는 일로 만드신 것 처럼 말입니다.(오순절에) 갑자기 성령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서로의 말을 알아듣기 시작 하였습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요? 우리 서로가 다른 언어를 사용 하는데도 무슨 말인지를 알아 들을 수 있는 것?” 성령께서 임하신 것으로 사람들이 서로 소통 하는 것이 가능 해졌습니다; 기적이 아닐까요!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술을 거나하게 마신 줄로 이해했을 것 입니다. 그 당시에는 이 일이 서로를 연결 하는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일들을 부인 하였습니다. “아니 지금이 아침 9시잖아.” 당연히 그는 아침 9시 부터 서로가 쉽게 하나가 되는 것을 이해 하지 못했습니다. 그 전날 부터 술을 마셔왔던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 보다는 그때 베드로는 뭘 했을 까요? 베드로가 말씀을 전할 때 군중들이 제자들을 조롱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 가까이에 있는 이웃들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증거 하였습니다.우리는 베드로가 누가복음 마지막에 보면 무엇을 하였는지를 기억 합니다. 그는 누구보다 뛰어난 제자 였습니다. 가이사랴 빌리보에서 마지막 만찬을 함께 나눈 예수는 그리스도이심을 용감하게 말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를 부인하고 도망 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예수님을 전할 것 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죽을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그런 생각은 꺾이고 상황은 그를 힘들게 만들었지요. 그의 뜨거웠던 마음이 수그러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뒤에 숨어버렸습니다; 저 멀리 말이지요! 그리고는 그는 예수님과 거리를 두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모른다고 부인 했지요 세번이나. 베드로는 그의 믿음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부인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 말씀을 놀라운 말씀으로 만들어줍니다. 어느 날 베드로는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을 했고 또 어느 날 예수님을 죽이라 외쳤던 모든 사람들이 다 듣도록 그는 거리에서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로마 군인들 역시 그를 문제덩어리라고 생각 하였을 것 입니다. 그의 인생은 위험에 빠졌을 것이지만 만인 앞에 서서 예수님을 외치고 전하였습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그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순절의 기적입니다.성령께서 임하시자 제자들은 온 세상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세상이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들을 듣고 이해 하였습니다. 몇 분 되지 않아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제 막 믿으려는 사람들이 세례를 받기 원했으며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였습니다. 성령께서 비로소 임하였을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보고서야 믿기 시작 하였습니다.다시 누가복음으로 돌아가서, 예수께서 말씀 하시기를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다” 고 했으며 왜 이런 일이 있어났는 지를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복음의 좋은 소식으로 갇힌 자를 해방하고 눌린 자를 놓여 나게 하며 눈먼자가 빛을 보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예수께 임하시자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누가복음의 두번째 책(사도행전)을 보면 사람들이 성령을 받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배웠습니다: 예수님께 그들의 믿음을 시험 당하면서 예수께서 그들의 하나님임을 알게 하셨습니다.지난 50년 간 목회를 해오면서 제가 헤이즐턴에서 학생 이었을 때 처럼 긴장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저는 여전히 이 사건에 대해서 긴장 하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 있는 말씀을 알아 들을까? 내 말씀을 전할 때 누가 우리 교회에 방문 할까? 제가 세인트 웨슬리에서 목회를 할 때 모인 사람들이10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럴 때면 긴장이 되었습니다. 특히 휴가중인 “친구 목사”가 와 있는 것을 볼 때나 벤쿠버 신학교의 교수님께서 와 계신 것을 볼 때에는 더욱 긴장을 하곤 했습니다. 이런! 오늘 내 설교를 평가 하러 오셨을까? 싶어졌었기 때문이었지요.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 하는 것이 떨린다고 하면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특히 교회에서는요. 그리고 특히나 공식적을 말을 할 때, 강의실이나, 법정, 의원실에서 말하는 사람들에게 주일날 교회에서 말하라고 해보면 다리가 떨리고 몸이 떨리고 땀이 줄줄 날 것 입니다.말씀을 전하는 것은 다른 류의 연설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전하는 것 입니다; 설교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이 비싼 옷을 입었는 지에 관심을 갖지 않고 예배를 잘 이끄는지 그리고 설교가 어떤지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렇지요?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관심을 두지 않는 것에 관심을 둡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팬이라면 우리는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고 희망과 사랑이 우리 안에 있으며 그것이 우리를 살 게 한다는 것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저는 이제 이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힘든 일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쉬운 일이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저희 사역자들은 멋진 옷을 입고 어떤 지침을 따르고 이를 실천합니다; 사람들이 기대하 듯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이런 일들이 복인 것이지요.그러나 오늘날에는 컴퓨터나 티비로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을 들으며 먹고 마십니다. 우리들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이 되면 비록 육신적으로는 거리가 두어야 하고 물론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설교하고 예수님에 대한 것을 나누겠지요. (코로나 때문에) 조금은 어렵겠지만 말이지요.말할 필요도 없이 은혜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일이 여전히 가능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하신 이후에 어느 누구도 무엇을 말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할 지를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으로 우리는 서로 이야기 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설교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오래 전 예언들이 예언하도록 하셨으니까요.대개 과거에는 제가 휴가를 얻어 교회를 떠나면 일반 성도들은 그들이 교회에 온 이유를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의미를 주는지 그리고 그들의 신앙에 대해 이야기 하게 하곤 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이야기가 녹음 된 테잎으로 듣고는 그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놀라운지, 그들이 증언함으로써 믿음에 확신을 가지는 것에 대해 감탄하곤 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이야기가 설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어떤 이야기들은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믿음을 실천 해나가는 이야기 였습니다! 긴장감은 언제나 있어오는 일이지만, 그 이야기를 함으로써 믿음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 이니까요. “저의 인생은 예수님과 함께 한 인생이었습니다” 저는 많은 경우를 실패 하였지만 언젠가는 성공 하리란 걸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붇돋우시고 함께 하심으로 저는 나아질 것을 믿었으니까요. 하나님께서 저를 믿으시고 기회를 주시기 때문이었습니다.”“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또한 누구든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예언자 요엘은 수 세기 전에 말씀 하셨습니다.” 세상이 이를 들을 것이다.이것이 저의 신앙입니다.
St. David's United Church, West Vancouver